[한경에세이] 혹해볼까?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나이를 먹는다. 살다 보면 나이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한 살이라도 늘려서 남에게 내세우려 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이라도 어리게 보이려고 낮추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다가 정작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공자는 마흔 살을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마흔 살이 되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마흔이 넘어서도 흔들리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을 보면 불혹의 경지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불혹이 쉬운 일이었다면 공자께서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맹자는 이것을 부동심(不動心)이라고 했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동요된다는 말은 부당하고 불의한 것에 동요됨을 의미할 것이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자. 부당하고 불의한 일이 아니면 혹해도 되지 않을까? 외물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아름답고 바람직한 일이라면 혹하는 것이 진정 참 인간의 길일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혹할 만한 것이 너무 많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아픔에 선뜻 손을 내밀어 위로하고, 길가에 핀 꽃에 혹해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예쁜 옷을 보면 귀여운 손자 손녀를 생각하며 혹해본다면 잠시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면 손편지 쓰는 일에 혹해보면 어떨까? 노인들도 익숙해진 모바일 편지나 이메일 편지보다 비뚤비뚤 쓰더라도 정감 넘치는 편지가 받는 사람의 하루를 즐겁게 할 것이다.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나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있다. 휴대폰으로 공연 예매를 하거나 계산을 하고 뉴스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여기에 너무 혹한 나머지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물론 자신의 삶도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혹할 때 혹하더라도 그것이 좀 더 아름다운 것이면 삶이 윤택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내 주변에는 대부분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많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사람의 삶은 마흔 이전에 갖춰진 것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말씀이나 맹자의 말씀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마흔이 넘어서 불편부당한 것에 혹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그 전에 훌륭한 인격을 갖춰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말을 잘 기억하기 바란다. 미움 대신 사랑에 혹하고, 거짓보다 진실에 혹하고, 외모보다 내면에 혹하기를….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거리를 멀게 할지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혹하며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