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질(質) 경영’과 ‘애자일(agile·날렵하고 민첩한)’, ‘디지털 전환(DX)’ 등을 새해 3대 경영 키워드로 제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응해 LG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매출, 이익보다 체질 개선이 중요”

28일 (주)LG에 따르면 구 회장을 비롯한 LG 계열사 경영진 40여 명은 화상회의를 열고 내년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경영과제를 선정했다. 지난달 이뤄진 계열사별 사업보고회 내용을 바탕으로 경영 키워드를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화상회의엔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주)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권봉석 LG전자 사장 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이번 인사에서 사업본부장이 된 류재철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사업본부장, 남철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CEO는 “위기에 제대로 대응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기회를 찾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실력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회의에서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질적인 변화와 성장이 중요하다”며 ‘질 경영’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를 평가할 때 매출이나 이익만 들여다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품질과 환경, 안전 등이 ‘질 경영’의 관리 지표로 꼽힌다. 구 회장은 “내 가족이 쓰는 제품, 내 가족이 일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구성원 개개인이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문화와 관련한 키워드는 ‘애자일’이다. 작고 민첩한 조직을 통해 경영 스피드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연구개발(R&D), 상품기획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애자일 조직에 필요한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강력히 추진할 과제로 DX를 꼽았다. 간부나 임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 업무 효율화 등에도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LG 계열사들은 올해 초부터 DX 역량 강화를 위해 임원급 외부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했다. LG CNS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지난 7월 합류한 윤형봉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2021년은 LG의 변곡점”

새해에도 LG그룹이 직면한 도전과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LG화학에서 분리한 배터리 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이 독자 경영을 본격화한다. 이달 초 출범한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한 해 조직을 안정화하는 작업에 주력할 계획이다. 여기에 차세대 배터리 개발, 생산설비 확대 등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도 나서기로 했다.

내년 5월엔 구 회장의 삼촌인 구본준 (주)LG 고문이 LG그룹에서 정식으로 독립한다.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실리콘웍스, LGMMA 등 5개 회사가 계열 분리된다. LG그룹은 (주)LG를 인적분할해 (주)LG신설지주(가칭)를 세우고 지분 정리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 LG마그나e파워트레인(가칭)은 7월 설립된다. 신설되는 법인의 지분 중 51%는 LG전자가, 나머지 49%는 세계 3대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인터내셔널이 가져간다. LG전자는 합작법인 설립을 계기로 전기차 파워트레인 시장에 본격 뛰어들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계열 분리와 합작법인 설립 등이 마무리되면 구 회장이 구상 중인 ‘뉴 LG’의 밑그림이 한층 더 분명해질 것”이라며 “2021년은 LG그룹이 또 한번 도약하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