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답답한 '고구마' 발언들 [여기는 논설실]
여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궤도이탈 발언이 점입가경이다. 28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의 쏟아낸 발언은 엇갈리는 호불호 속에서도 그를 미래지도자로 주목해온 이들에게 '이건 뭐지'라는 걱정을 안겨줄 만큼 엉뚱했다.

이 지사는 “OECD 평균 국가부채비율이 123%인데, 우리는 39%에서 44%로 올라갔다고 벌벌 떤다”며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기획재정부를 직격했다. 우등생인 학생에게 반 평균 점수에 수렴하도록 공부를 등한시하는 게 옳은 처신이라고 우기는 듯하다. 국가부채비율이 40%~45%를 넘어서면 성장률 등 경제 전반에 큰 부작용을 준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 레드라인을 넘는 비상상황에서 '그깟 빨간줄이 뭐 대수냐'는 식의 현실회피 발언에 불과하다. 평균을 갉아먹는 OECD 고(高) 부채비율국이 수시로 국가부도상황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 지사는 “부채가 800조원인 우리나라는 선진국 국가부채비율 감안 시 1600조원 정도의 (재정)지원 여력이 있다”고도 했다. 먹는 양을 3배로 늘려 지금의 날렵한 몸을 늙은 선진국처럼 고도비만형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재정지출을 통해 GDP를 늘리면 오히려 국가부채비율이 낮아진다'는 주장도 폈다. 돈을 퍼부어도 부채증가보다 성장이 더 높을 것이란 주장인데, 이 역시 경제 원론에 배치된다. 재정투입의 GDP 제고효과가 지출액에 못미치는,즉 재정승수가 1 아래로 떨어진 지가 이미 오래여서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반복도 당혹스럽다. '1차 재난지원금으로 전국민에 14조원을 풀었지만 소비증가는 4조원 정도에 그쳤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가 나온 게 불과 몇 주 전이다. 소비되지 않은 10조원을 코로나 피해계층과 업종,생계를 위협받는 저소득층에 집중지원했다면 재정정책의 효과가 훨씬 컸을 것이란 강력한 시사다. 이 지사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만이 선(善)이라는 듯 상대를 가리지 않고 꾸짖지만 근거박약이다.

'지역상품권으로 주면 모두 소비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지만, 이 역시 간단치 않은 이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얼마전 2010~2018년 3200만개 전국 사업체를 전수조사해 "지역화폐 발행으로 추가로 발생하는 지역의 순 경제적 효과는 없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지역화폐의 도입은 명백하게 제로섬 게임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지역 내 매출증가는 인접 지자체 소매점의 매출 감소를 대가로 한다고 분석했다. 지역화폐 발행 비용, 보조금 지급예산 등을 감안할 때 “모든 지역이 지역화폐 도입시 사회 전체적으로는 가장 열등한 균형이 실현된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제대로된 반박보다는 ‘근거 없이 정부정책 때리는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을 "엄중문책해야 한다"는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경기도 산하 씽크탱크 경기연구원이 "지역화폐는 작년부터 본격 사용됐는데 조세연은 2018년 이전 자료로 분석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반박했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이 지사는 탁월한 정책추진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일도양단식 말과 행동에 지지층은 '사이다'라며 열광한다. 하지만 정책의 다양한 효과를 무시하는 독불장군식 행태에서 '고구마'보다 더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의 선진국에서조차 논란이 많은 기본소득제에 대해서도 '경제위기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한다. "이재명 지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경제를 잘 안다는 과도한 자기확신"이라는 지적에 가슴을 연다면 더 큰 정치가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