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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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을 잘했어도 부족한 '10'
돌아보고 다듬는 게 일류사회
잘못 지적에 발끈하면 못난이
백신 공급과정 '실수' 인정한
美정부책임자 박수 받았다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돌아보고 다듬는 게 일류사회
잘못 지적에 발끈하면 못난이
백신 공급과정 '실수' 인정한
美정부책임자 박수 받았다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이학영 칼럼]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12/07.21333375.1.jpg)
미국이 ‘초고속 작전’을 개시한 것은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이었다. 백악관은 제약회사와 군 관계자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했다.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을 최대한 앞당기는 데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개발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덜어줄 자금 지원과 빠른 사용 승인이 필요하다는 업계 건의를 전폭 수용했다.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공급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제약회사 모더나에 9억5500만달러(약 1조500억원)의 백신 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3억 도즈(1회분)를 ‘입도선매(立稻先賣)’한 게 단적인 예다.
그러나 백신 수송 및 공급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미시간 등 14개 주(州)에서 “약속했던 할당량만큼 공급받지 못했다”는 항의가 불거졌다.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인 곳의 항의는 더욱 격렬했다. 이때 상황을 반전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수송 책임자인 퍼나 장군이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 전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며 정중하게 사과한 것이다. 드넓은 미국 땅의 50개 주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게 된 미국인들은 책임자의 솔직한 해명과 사과에 고개를 끄덕였고, 불만이 누그러졌다.
공급 차질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의 솔직한 사과’라는 제목의 사설(24일자 톱)을 게재하며 작전 책임자의 상세한 설명과 사과를 칭찬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I failed, nobody else failed)”라는 퍼나 장군의 사과 발언을 전하며 “이런 말을 공직 책임자에게서 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그를 비롯한 초고속 작전팀은 민간 기업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잘 도왔다는 사실에 유념한다”고 했다.
어느 것 하나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코로나 방역 문제만이 아니다. 백신 확보는 물론 부동산 일자리 등 논란이 뜨거운 현안마다 대통령부터 각 분야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무오류 강박증’에 빠져 책임 회피와 남 탓에 급급해 있다. ‘90’을 잘했더라도 미흡한 ‘10’을 반성하고 개선 방향을 찾는 게 발전하는 사회와 조직의 모습이다. 조그마한 지적에도 발끈하고 수용을 거부하는 건 스스로에게 자신 없는 못난이의 행태일 뿐이다. “우리는 실수했지만, 그것을 반성하고 배움으로써 더 완전해지고 있다.” 퍼나 장군이 사과 브리핑에서 한 얘기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