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엄벌 만능주의와 책임의 외주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으로 논란이 뜨겁다. 법안을 보자면 이념과잉을 넘어 섬뜩하다. 5개 법안 모두 전 세계 어느 기업도 준수할 수 없는 내용과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처벌을 공통으로 담고 있다.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정의라는 이름 아래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발의된 박범계 의원안도 법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점에서는 다른 법안과 다르지 않다. 중대재해법 주창자들에게는 재해감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과정과 수단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민주주의 결정체인 헌법 원칙도 액세서리로밖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을, 그것도 엄벌로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은 재해도 줄이지 못하고 애먼 사람만 처벌에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더 큰 문제는 책임회피용으로 입법을 주장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을 게을리해온 자신들의 책임을 가리면서 자신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하는 데 여념이 없다. ‘책임의 외주화’ 의도가 역력하다.

이념만으로는 재해를 감소시킬 수 없다. 재해예방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엄벌주의 접근을 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재해예방 후진국으로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경험적으로 보면 엄벌만능주의는 무능하고 문제해결에 진정성이 없는 정권이 즐겨 사용하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엉성한 범죄구성요건과 비현실적인 예방기준과 같은 재해예방시스템의 문제는 개선하지 않고 처벌강화에만 의존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를 경찰국가로 만드는 길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처벌이 강한 축에 속하는 국가의 경우 충실한 예방행정시스템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한 처벌을 규정하더라도 지킬 수 없는 법으로는 ‘군기’는 잡힐지 모르겠지만, 안전역량 강화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그간의 경험이 웅변하고 있다. 처벌보다 예방행정의 역량과 노력이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은 안전학계에선 상식이다. 미국, 일본 등보다 훨씬 많은 행정인력으로도 수준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고장 난 예방행정시스템을 정상화하지 않고는 처벌을 강화한들 별무소용이다.

엄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법이 불명확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준법의지가 강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법 집행자에게는 이처럼 편리한 법이 없겠지만, 기업과 경영자의 인권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면 고용노동부 특별사법경찰과 일반경찰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중복 수사하게 된다는 점도 큰 문제다. 특별사법경찰이 하던 산업안전보건법 수사업무를 일반경찰이 중복 담당하고 사실상 대체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 소규모 사업장 적용 유예, 인과관계 추정 등 한두 개 조항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위헌, 중복수사, 실효성 등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정치권에 묻고 싶다. 본인이나 가족이 기업을 운영하더라도 중대재해법에 찬성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라면 이 법에 규정된 안전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못 하면서 이 법을 찬성한다면 기업은 안중에도 없는 ‘내로남불’이다.

처벌을 대폭 강화한 ‘김용균법’을 졸속 통과시키면서 호들갑을 떤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그때 입법에 앞장선 자들은 이 법이 산재문제를 크게 개선시킬 거라고 나팔을 불어댔다. 그런데 결과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중대재해법을 발의하기 전에 김용균법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반성을 한 번이라도 해봤는가. 기업은 실험대상이 아니다.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 마땅한 이유다. 진정 누구를 위한 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