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서재] 근대 서구 합리성은 아주 이례적 현상이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조지프 헨리히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인간들》
"경쟁·자연선택 거쳐 혈연·지연 벗어나
기독교가 로마서 공인된 게 결정적 역할"
"경쟁·자연선택 거쳐 혈연·지연 벗어나
기독교가 로마서 공인된 게 결정적 역할"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에 파견된 전 세계 149개국 외교관들은 2002년까지 불법 주차를 해도 벌금에 대해 면책 특권을 누렸다. 신기한 것은 영국, 독일, 캐나다 같은 선진국 외교관들은 불법 주차 경고장 자체를 거의 발부받지 않은 반면, 이른바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많은 나라의 외교관들은 딱지 일색이었다. 2002년 외교관에게 벌금 납부가 의무화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민족성이 달라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근대 세계의 경제 발전은 왜 하필 서구, 그것도 영국과 북부 유럽 국가가 주도했는가? 그들이 원래 뛰어나서였을까? 앞서 찬란했던 이슬람 및 중국 문명, 그리고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역이 달라서인가, 아니면 인종 자체가 다른 것인가?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자 겸 진화생물학자인 조지프 헨리히는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인간들(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에서 자연선택과 진화 관점에서, 문화인류학의 다양한 증거와 행동경제학의 정교한 실험 결과를 동원해 그 해답을 모색했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서구인의 합리성은, 원래 전혀 당연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은 현상이었다. 인류사에 등장한 다양한 생활 양태를 전체로 놓고 보면, 근대 서구인의 합리성은 오히려 분포의 꼬리에서 나타날 법한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특이한 심리와 행동구조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을 낳은 동력이 됐다.
고대 이래 부족 단위 혈연과 지연 중심의 공동체로 굴러가는 게 영장류 인간의 본모습이었다. 일부다처, 근친혼, 다신숭배, 대가족 공동생활과 공동소유 등이 그 주된 특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면부지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조직이 합리와 법치에 의거해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류학 관점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진화한 심리를 ‘비인간적 친사회성(impersonal prosociality)’이라고 불렀다. 다양한 종교 규범·의식, 결혼·가족제도, 생산·교환제도가 수천 년에 걸쳐 경쟁과 자연선택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친족 기반 심리를 먼저 탈피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나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고등 종교로 등장한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일부일처, 간통금지, 일신숭배, 핵가족화를 추구하는 사회규범이 등장했고, 혈족을 기반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지역 가문들은 속속 교회 앞에 굴복했다. 죄를 씻고 천국에 가기 위해 부자는 교회에 기부해야 한다는 믿음은 교회의 재산을 축적하는 결과를 낳았다. 타락한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낳았고, 이와 동시에 대중 사이에 성경 출판과 보급이 인쇄술에 힘입어 폭증하면서 사회의 지식 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기계식 시계가 발명되고 합리성과 규칙성을 따르는 심리가 등장했다.
중세 후기에는 혈연 중심의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자발적으로 결성된 길드와 대학이 급증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했고 훗날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바탕 위에 증기와 전기 기술이 개발되고 대규모 기업 조직이 등장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영국과 중북부 유럽 지역이 가장 앞서갔다. 개신교 침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이베리아반도, 이탈리아반도 남부, 남미 대륙, 이슬람 문명권, 그리고 유교와 불교의 사회 규범이 지배했던 아시아권은 친족 기반 규범으로부터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물렀다. 문화인류학 관점에서 보면, 개인주의와 경쟁이 탐욕을 조장하고 인간성을 파괴한다고 하는 흔한 선입견도 근거가 없다. 지역 간 전쟁이나 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던 곳일수록 오히려 집단 내에서 협력, 이타심, 그리고 효율적인 조직화가 강화됐다는 증거가 허다하다.
한국 사회는 일제시대와 해방 후 수십 년 사이에 서구 제도가 급하게 이식됐다. 다행히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이 최단기간에 전근대 농촌사회를 탈피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관계를 동원해서 매사를 처리하려는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습성, 세상을 민족 단위로 구분하는 종족주의 세계관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진정한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근대 세계의 경제 발전은 왜 하필 서구, 그것도 영국과 북부 유럽 국가가 주도했는가? 그들이 원래 뛰어나서였을까? 앞서 찬란했던 이슬람 및 중국 문명, 그리고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역이 달라서인가, 아니면 인종 자체가 다른 것인가?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자 겸 진화생물학자인 조지프 헨리히는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인간들(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에서 자연선택과 진화 관점에서, 문화인류학의 다양한 증거와 행동경제학의 정교한 실험 결과를 동원해 그 해답을 모색했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서구인의 합리성은, 원래 전혀 당연하지도 않고 자연스럽지도 않은 현상이었다. 인류사에 등장한 다양한 생활 양태를 전체로 놓고 보면, 근대 서구인의 합리성은 오히려 분포의 꼬리에서 나타날 법한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 특이한 심리와 행동구조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와 번영을 낳은 동력이 됐다.
고대 이래 부족 단위 혈연과 지연 중심의 공동체로 굴러가는 게 영장류 인간의 본모습이었다. 일부다처, 근친혼, 다신숭배, 대가족 공동생활과 공동소유 등이 그 주된 특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면부지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조직이 합리와 법치에 의거해서 세상을 돌아가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인류학 관점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진화한 심리를 ‘비인간적 친사회성(impersonal prosociality)’이라고 불렀다. 다양한 종교 규범·의식, 결혼·가족제도, 생산·교환제도가 수천 년에 걸쳐 경쟁과 자연선택을 거치면서 전통적인 친족 기반 심리를 먼저 탈피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나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고등 종교로 등장한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일부일처, 간통금지, 일신숭배, 핵가족화를 추구하는 사회규범이 등장했고, 혈족을 기반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지역 가문들은 속속 교회 앞에 굴복했다. 죄를 씻고 천국에 가기 위해 부자는 교회에 기부해야 한다는 믿음은 교회의 재산을 축적하는 결과를 낳았다. 타락한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낳았고, 이와 동시에 대중 사이에 성경 출판과 보급이 인쇄술에 힘입어 폭증하면서 사회의 지식 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기계식 시계가 발명되고 합리성과 규칙성을 따르는 심리가 등장했다.
중세 후기에는 혈연 중심의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자발적으로 결성된 길드와 대학이 급증했다. 이들은 서로 경쟁했고 훗날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바탕 위에 증기와 전기 기술이 개발되고 대규모 기업 조직이 등장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영국과 중북부 유럽 지역이 가장 앞서갔다. 개신교 침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이베리아반도, 이탈리아반도 남부, 남미 대륙, 이슬람 문명권, 그리고 유교와 불교의 사회 규범이 지배했던 아시아권은 친족 기반 규범으로부터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물렀다. 문화인류학 관점에서 보면, 개인주의와 경쟁이 탐욕을 조장하고 인간성을 파괴한다고 하는 흔한 선입견도 근거가 없다. 지역 간 전쟁이나 기업 간 경쟁이 치열했던 곳일수록 오히려 집단 내에서 협력, 이타심, 그리고 효율적인 조직화가 강화됐다는 증거가 허다하다.
한국 사회는 일제시대와 해방 후 수십 년 사이에 서구 제도가 급하게 이식됐다. 다행히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이 최단기간에 전근대 농촌사회를 탈피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관계를 동원해서 매사를 처리하려는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습성, 세상을 민족 단위로 구분하는 종족주의 세계관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진정한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