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스1
검찰이 '국정농단' 사태 연루 혐의로 기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후 진술 과정에서 울먹이며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46개월, 일수로는 1500일 넘게 진행된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 절차가 모두 마무리 됐다. 이제는 내년 1월18일 재판부의 최종 판단만 남게 됐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은 30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심리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는 각각 징역 7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5년이 구형됐다.

특검은 "법치주의와 평등의 원리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고 대우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이든, 최고의 경제적 권력이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며 "법원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할 기관인 바 엄정한 판결로 법치주의 확립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헌법의 평등 원리와 법원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게 된다"며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과 삼성이 아닌 곳으로 나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그룹이 삼성이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삼성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또 "국정농단 주범들은 모두 중형이 선고됐고, 본건은 국정농단 재판의 대미를 장식할 화룡정점에 해당한다"며 "준법감시제도와 같은 총수 의지에 달려있는 제도를 이유로 법치주의적 통제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에게 무조건 과도한 엄벌을 해달라는 게 아니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유지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 가치인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을 수호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특검은 다만 파기환송 전 1·2심에서 모두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것보다 구형량을 다소 낮췄다. 특검은 "대법원에서 일부 혐의에 무죄가 확정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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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은 "(뇌물공여는)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이며 진지한 반성도 하고 있다"며 "특검 주장과 달리 뇌물 혐의의 권고형은 징역 2~3년이고, 횡령 혐의는 징역 2년6월~5년인데 양형 기준에 의해도 이 사건엔 집행유예가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상당 기간 수감생활을 한 점과 함께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재판부가 면밀하게 판단하겠지만,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결코 간과돼선 안 된다"고 했다.

다른 변호인은 "이 부회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도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또 위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은 없다"며 "이 부회장은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 측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대국민사과를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위법함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조치라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20여분간 직접 최후진술을 진행했다. 이 부회장은 "오늘 저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이 일로 인해 송구스럽고, 회사와 임직원들이 오랫동안 고생했다.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져 경황이 없던 중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 자리가 있었는데 지금 같으면 결단코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저의 불찰, 저의 잘못, 제 책임이다"라고 했다.

또한 "죄를 물을 일이 있으면 저한테 물어주시고, 여기 같이 있는 선배들(피고인들)은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들"이라며 "저를 꾸짖고 이 사람들은 너무 꾸짖지 말아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어 준법감시위원회 등 삼성의 향후 준법 경영에 대해선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불편하게 느껴지고 멀리 돌아갈 수도 있지만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앞으로 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오로지 회사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만 하겠다"며 "아이들이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언급되는 일 자체가 없도록 하겠다"며 4세 경영 종식에 대해서도 재차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재벌 폐해를 개혁하는 일에도 과감히 나서겠다"며 "우리 사회와 국민에게서 평생 갚지 못할 만큼 받은 빚을 꼭 되돌려 드리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별세한 고 이건희 회장을 언급하며 수차례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선대보다 더 크고, 더 강하게 키우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는 가르침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들어있다"며 "진정한 초일류기업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기업인 이재용이 추구하는 일관된 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의 정신자세와 회사 문화를 바꾸고 여러 부당한 압력이 들어와도 거부할 수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만들겠다"며 "이같은 일들이 이뤄질 때 나름대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게 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고 청탁한 후 그 대가로 약 300억원 상당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7년 2월 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으나 지난해 8월 대법원은 2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50억원의 뇌물·횡령액을 추가로 인정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파기환송심 과정에서는 특검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면서 재판이 공전되기도 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