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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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국정농단 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남은 것은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결뿐이다. 특검 수사가 이 부회장을 정조준한 2016년 이후 삼성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이 부회장이 경영 활동에 매진할 수 없었던 탓에 의사결정이 지체된 프로젝트가 수두룩하다. 이 부회장은 열 차례의 검찰 소환 조사와 세 번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재판 출석은 80번이 넘는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 개인과 삼성이란 기업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이 부회장이 없어도 삼성엔 문제가 없다는 논리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경영에 신경 쓰지 못했음에도 글로벌 기업을 압도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선 당장의 실적만 볼 일은 아니라는 정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5년, 10년 후 먹거리를 준비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미국의 로봇 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1조원에 사들이며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신을 예고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 도전하는 한편 수소사업 추진단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인텔 낸드사업부를 10조300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인수합병(M&A) 규모로는 최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와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성과를 냈다.

삼성은 4대 그룹의 맏형이지만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2016년 글로벌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후 대형 M&A로 부를 만한 딜이 없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재판부가 대법원 주장을 받아들여 이 부회장이 재수감되면 삼성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완전히 작동을 멈출 수 있다. 경제계에서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부회장과 삼성이 재판부의 ‘숙제’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이 준법감시 제도를 강화하면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삼성은 지난 2월 독립적인 준법감시 기구인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했다. 지난 5월엔 이 부회장이 직접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며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4년간 혹독한 대가 치른 삼성…이제 이재용 놓아줘야 할 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뇌물 공여였다”는 주장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죄가 없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지난 4년여간 이 부회장과 삼성이 상당한 대가를 치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해묵은 흠결로 이 부회장의 잘못을 계속 문제 삼는 것은 삼성에도,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젠 이 부회장을 놓아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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