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못 막은 우주 덕후들의 열정…"첫 민간 로켓 카운트다운"
지난해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소형 위성발사용 로켓 개발업체 이노스페이스의 김수종 대표(45·사진)에게도 시련을 안겼다. 코로나 대유행(팬데믹) 여파로 투자 자금이 일순간 얼어붙으면서다. 기술력을 갖춘 유망 우주항공 스타트업이란 기대는 ‘수익을 못 내는 고위험 투자처’란 싸늘한 평가로 바뀌었다. 부품을 공급하던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하기도 힘겨워졌다. 김 대표는 국내외 협력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대금 결제를 미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위험이 큰 우주산업에 대한 협력사들의 이해가 없었다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축년 새해 그는 커다란 도전 앞에 서 있다. 올 12월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센터에서 첫 시험 발사체(로켓)의 발사가 예정됐다. 성공하면 국내 민간사업자로는 처음으로 위성용 로켓을 쏘아올린 업체가 된다. 김 대표는 우주 여객선 사업에도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그의 담대한 꿈을 현실로 바꾸는 원년이다.

“수년 내 소형 발사체 시장에 뛰어드는 글로벌 업체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금이 ‘골든타임’이죠. 지난해 위기를 발판 삼아 올해는 반드시 희망의 축포를 쏠 겁니다.”

#꿈: 우주를 비즈니스 무대로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왼쪽)와 직원들이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로켓시험장에서 올해 말 발사 예정인 나노위성 시험 발사체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왼쪽)와 직원들이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로켓시험장에서 올해 말 발사 예정인 나노위성 시험 발사체의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어린 시절 김 대표에게 ‘우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항공대 3학년 때 처음 로켓엔진 시험을 하면서 온몸으로 느낀 굉음과 진동은 그를 로켓 개발의 길로 이끌었다. 로켓 엔진기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스라엘로 건너가 테크니온공대 로켓추진센터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2017년 이노스페이스를 설립했다.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첫발이었다.

김 대표는 우주 개발 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위성 수요가 늘면서 발사체 사업이 돈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세계 각국 위성을 실어 지구 궤도에 띄워 운임을 받는다는 계획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한국판이었다.

김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의기투합했다. 이 중 일부는 해외 명문대와 연구소를 포기하고 벤처기업행을 택했다. 이노스페이스는 30명 임직원 중 항공우주 관련 석·박사급 인력이 18명이다. 김 대표는 “같은 꿈을 꾸는 우주 ‘덕후’(마니아)들이 열정 하나로 뭉쳐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위기: 좌초 고비 맞은 프로젝트

초기 발사 준비는 순조로웠다. 이노스페이스는 첫 단계로 무게 50㎏의 나노급 위성을 띄울 추진 발사체(ICARUS-N) 제작에 나섰다. 로켓을 개발하기 위해 충남 금산에 추력 20t급 엔진 성능시험장을 조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먼저 해외에서 들어오는 부품 수급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이어 외부 투자가 막혔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외부 투자를 받으며 개발 일정을 진행했기 때문에 투자 일정이 어긋나자 바로 자금난에 직면했습니다. 해외에선 기술력 높은 스타트업에 장기 투자를 많이 하는데 국내 투자금은 비교적 단기가 대부분입니다. 일부 해외 투자자는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라는 제안까지 하더군요.”

지난해 6월께 투자받은 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품 협력사에 줄 결제 대금이 부족했다. 당초 8월로 잡은 로켓 시험 발사 일정도 연기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김 대표는 기업 현황 자료를 들고 무작정 협력사를 찾아다녔다. 자료에는 그와 의기투합한 직원들의 이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우주 개발에 대한 열정만으로 모인 젊은이들입니다. ‘한국판 스페이스X’가 꿈만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의 절절한 호소에 협력사가 하나둘씩 결제를 연기해줬다.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전: 위성로켓 시장의 택시

우주는 인류의 미래다.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우주 굴기’에 나서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세계 우주개발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서서히 바뀌면서 국내 우주산업도 변화를 맞고 있다. 상업용 통신위성, 과학위성 등 수요가 급증하면서 우주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발사체를 통한 우주 운송 사업은 미국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원조 격이다. 스페이스X는 대형 로켓 ‘팰컨9’ 등을 통해 군사, 통신 등 다양한 용도의 위성을 지구 궤도로 올렸다. 하지만 대형 로켓은 여러 위성을 모아 한꺼번에 싣고 날아간다. 이 때문에 발사 대기 시간만 2~3년이 걸리기 일쑤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대형 로켓이 충족하지 못하는 위성 수요에 착안했다.

그는 “위성용 로켓사업에서 버스 개념의 대형 발사체 대신 택시 개념의 소형 발사체 사업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소형 발사체는 각 위성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목표 궤도로 띄울 수 있는 만큼 틈새시장에서 ‘택시’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희망: 올해 첫 민간 로켓 발사

그는 다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올해 말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장에서 50㎏급 나노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시험 발사체를 쏘아올릴 예정이다. 국내에 인공위성의 상업 발사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다. 시험 발사에 성공하면 내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상업 위성을 실어 우주에 올릴 계획이다.

곧이어 150㎏급 위성을 싣는 마이크로위성발사체(ICARUS-M)와 500㎏급을 탑재하는 미니위성발사체(ICARUS-S)도 제작할 방침이다. 우주여행을 하는 유인 비행체 사업에 대한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2026년 매출 25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 대표는 “앞으로 사업이 자리잡으면 위성의 20% 정도는 국내에서 쏘아올릴 계획”이라며 “발사장을 짓기 위해 전남 고흥군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