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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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유명인들까지 합세하면서 정인이를 위로하고 재발방지 및 형량강화를 다짐하고 있다. 양엄마 A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숨진 입양아 정인이 사건은 알면 알수록 충격적이고 의문투성이다. 과정과 숨지기 전까지도 그렇지만, 이렇게 학대할 거면서 "왜 입양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 속을 맴돈다.

맘카페를 중심으로 제기된 이유는 '아파트 청약' 때문이다. 1순위 가점으로 목동의 한 아파트에 당첨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은 이를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부부는 주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입양 시 받을 수 있는 정부혜택과 금전적인 혜택을 다각도로 수사해 A씨의 입양 동기가 청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입양 동기에 대해 “A씨가 결혼 전 연애를 할 때부터 입양 계획을 세운 것으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자세한 조사는 더 해봐야 알겠지만 '입양'이 주택청약의 당첨 수단이 된 건 생소한 일이 아니다. 자녀 1명으로 청약통장의 점수를 쌓아 당첨되기는 어려워서다. 그렇다보니 위장결혼과 위장이혼이 판을 치고, 자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양아빠나 양엄마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자녀 둘이 있는 싱글맘'은 위장결혼의 적절한 타깃이라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15점을 올릴 수 있어서다. 싱글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동거도 아니고 주소지만 잠시 옮기고 단기간에 보상이 따라오니 형편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84점이 만점인 청약통장은 무주택기간(32점 만점)+부양가족수(35점)+통장가입기간(17점) 등으로 구성된다. 무주택기간은 1년 마다 2점씩 늘고 통장점수는 1년에 1점씩 는다. 무주택기간과 통장 가입기간이 15년 이상은 되어야 49점 만점이 된다. 점수를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부양가족수다. 1인당 5점씩 올라간다. 혼자살면 5점이지만,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15점이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다. 세식구가 최대로 올릴 수 있는 점수는 64점이다.
한국경제신문 2014년 11월7일 기사. 당시에도 아파트 청약당첨을 위한 위장결혼과 이혼이 있었다. / 자료=한경DB
한국경제신문 2014년 11월7일 기사. 당시에도 아파트 청약당첨을 위한 위장결혼과 이혼이 있었다. / 자료=한경DB
한국경제신문 2014년 11월7일 기사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와있다. 당시 기자도 취재를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서류상이라지만 아파트 당첨을 위해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입양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태가 낯설기 짝이 없었다. 당시에는 '로또 청약'이 많지 않은 시기였지만 일단 '로또'라는 게 확실하면 브로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청약통장을 매매하는 건 물론이고 가족관계까지 주선해줬다.

모집공고일 전날 혼인신고가 된 서류를 보고 있으면 '몇 년동안 무주택기간 유지하면서 전세 사는 사람들은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기사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브로커 쪽에서 위장결혼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도 듣게 됐다. 낮은 임금으로 자녀를 거두고 있는 싱글맘, 남편이 사별한 상태에서 시부모까지 부양하는 며느리, 건강문제로 사실상 경제활동이 어려운 여성 등 딱한 사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위장 결혼이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실제 남편과 이혼을 한 경우까지 얘기를 들자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앞서 영화에서도 아파트를 받기 위한 조작이 묘사된 바 있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오아시스'에서다. 뇌성마비 장애인 여성(문소리)의 오빠는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점을 구실로 임대 아파트를 받지만, 정작 장애인인 그녀는 옛날 살던 그 허름한 집에 사는 설정이 나왔다. 이처럼 아파트 당첨을 위해 가족이 파괴되는 현상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때마침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분양 주택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정청약 현장점검 결과 위장전입, 청약통장 매매, 청약자격 양도 등 부정청약 의심사례 197건과 사업주체의 불법공급 의심사례 3건을 적발하고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 수사결과에 따라 위반행위자에 대하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부정청약으로 얻은 이익이 1000만원을 초과하게 되면 최대 그 이익의 3배까지 벌금에 처해진다. 위반행위자가 체결한 주택공급 계약도 취소되며, 향후 10년간 청약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도 제한된다.

그렇다면 7년 전의 시장과 현재의 시장은 뭐가 달라졌을까? 아마도 이러한 시도를 고려하는 청약자들이 많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에는 '로또 청약'도 많지 않았고 일단 시도를 하면 당첨확률이 높았다. (당시에는 경쟁률이 낮았다) 이제는 모델하우스 문을 여는 아파트마다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보장된 경우가 많다. 정부의 규제에도 집값은 올랐고, 분양가를 통제하니 차익은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전날 발표한 사례는 전국 21개 단지에서 추린 결과다. 물리적으로 전국에서 분양되는 모든 아파트를 전수조사하기는 어렵다보니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인이 사건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조사를 통해 청약 때문이라는 입양 이유가 밝혀진다면 중한 처벌이 고려되야 한다. 서류상의 조작을 넘어 이익을 위해 사람을 사고파는 인신매매와 다를바가 없다. 짧은 생애만큼 슬픔도 더 크다. #정인아 미안해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