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양의 생전 모습.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캡쳐
정인양의 생전 모습.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캡쳐
학대로 입 안이 찢어진 정인이에게 구내염 진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소아과 의사가 입을 열었다. '정인이 사건'에 대한 공분이 일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의사의 면허를 박탈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오자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해당 소아과 의원 원장인 그는 5일 밤늦게 <한경닷컴>에 "진료 당시 정인이의 입 안 상처와 구내염, 체중 감소에 대해 모두 소견을 밝혔다"고 해명했다. 정인이의 입 안 상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이 증상을 놓친 채 구내염으로만 오진한 게 아니며, 허위 진단서를 발급했다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소아과 원장은 "정인이 양부가 지난해 9월23일 아동보호소 직원과 함께 병원을 찾았을 당시 정인이에게 구강 내의 상처, 구내염 및 체중 감소가 관찰됐다고 분명히 전했다"며 "구강 내 상처와 구내염에 대해서는 치료를 진행했고, 체중 감소에 대해선 대형 병원의 별도 검사가 필요하다고까지 언급했다"고 전했다.

그는 진료 당시 정인이의 구강 상처 이유를 물었지만 "놀다가 다친 것"이란 양부 답변을 의심하지 않았던 점, 체중 감소를 인식하고도 영양실조 등 아동학대 정황을 인지하지 못한 점 등에 대해선 "(정인이가) 감기 등의 증상으로 온 경우가 전부였고, 상처 치료를 위해 방문한 적은 없어 아동학대를 의심할 정황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6개월 정인이 .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그것이 알고 싶다' 16개월 정인이 .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정인이에 대한 2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 진료 당일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고 했다.

진료 마지막 즈음 구강 내 상처로 아동학대 판정을 할 수 있는지 아동보호소 직원이 물어본 데 대해서도 "만약 맞아서 생긴 상처였다면 주변에 점상 출혈, 멍, 압통 등이 관찰될 텐데 당시엔 발견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는지도 명확하지 않아 '지금 상태만으로는 아동학대로 확진할 수는 없다'고만 말했다"고 덧붙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등장한 아동학대를 신고한 소아과 의사와 판단이 달랐던 것 또한 그 이전부터의 아동학대 사실 인지, 영양 상태 등 판단의 자료나 전제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부적절한 이유로 정인이 양부모를 도와준 게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동석했던 아동보호소 직원이 과거 아동학대 신고 내용이나 정인이를 오래 봐온 소아과 의사가 영양실조를 이유로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면 해당 의사에게 연락해 상세한 내용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5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뉴스1
5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는 글이 적혀 있다. 사진=뉴스1
허위 진단서를 작성해줬다는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소아과 원장은 "정인이 진료와 관련해 어떠한 진단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입 안 상처를 구내염으로 바꿔 진단한 사실도 없다"면서 "아동보호소 직원이나 양부가 별도 요구하지 않아 소견서 등도 발급하지 않았고, 구내염 등에 필요한 약을 위해 처방전만 발급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정인이를 도와줄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제가 밝힌 소견이 정인이 양부모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깊이 책임을 통감한다.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책도 많이 했다"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부분에 관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인이의 죽음에 관해 도의적,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불이익이나 비난도 당연히 감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이후 사실과 너무나 다른 내용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퍼졌고 저와 저희 병원 의료진은 이를 사실로 오해한 국민들로부터 견디기 힘든 비난을 받고 있다"며 "고민 끝에 사실과 다른 내용은 바로잡고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고 호소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