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아침] 숲이 된 미루나무
나무 한 그루가 희미하게 서 있다. 초록 이파리들은 솜을 뭉쳐놓은 것처럼 폭신해 보이고, 풀밭과 나무 뒤의 배경은 흐릿하기만 하다. 파스텔로 그린 회화작품 같지만 사진가 엄효용이 촬영한 ‘광나루 한강공원 미루나무 봄’이란 작품이다. 한강 둔치 공원에 줄지어 서 있는 수백 그루의 미루나무를 하나의 프레임에 중복해 담아서 형태가 흐릿하게 나타났다. 한 그루의 나무로 보이지만 그 안에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들어 있는 숲인 것이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여러 장소를 다니며 다양한 나무를 담아왔다. 서울 양재대로의 은행나무들도, 우면산의 메타세쿼이아들도 작가의 프레임 속에서 작고 신비한 숲으로 변신했다. 그래서 연작의 제목이 ‘작은 숲(Little Forest)’이다.

가로수는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물이다. 그런 존재가 작가의 독특한 발상을 통해 특별하고 의미심장한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났다.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이용해 회화나 조각 등 기존의 예술 장르에서는 시도할 수 없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