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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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안심 전세대출을 둘러싸고 은행과 HUG간 분쟁이 늘고 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이후 전세 보증금 반환 관련 사고가 늘면서 부실이 급증한 탓이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게 되면서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은행권 “HUG 전세 대출에 ‘몸살’”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HUG 안심 전세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마다 분쟁과 업무 마비를 겪고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안심 전세대출 부실책임을 놓고 HUG측과 시비를 가려야 하는 일이 늘었다”며 “영업점마다 전화를 하는 통에 HUG 지사에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상품은 전세금 5억원 이하(수도권 기준) 내에서 전세 보증금을 보증해준다.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HUG가 은행에 대신 갚아준다. 서울보증보험, 주택금융공사도 비슷한 상품이 있지만 HUG 상품은 저소득층에 특화돼 있고 금리도 최대 0.4%포인트 저렴해 청년층 및 신혼부부가 주된 고객이다. 은행권에서는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기업 부산 광주 수협은행 등이 이 상품을 위탁 운영해왔다.

은행에서 볼멘 소리가 나오는 건 보증금 관련 사고가 늘어난 탓이다. HUG가 은행에 대신 갚아주면 되지만 ‘면책조항’을 들어 거부하는 사례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 얘기다. 대위변제를 받지 못한 은행은 제휴한 보험사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야 한다. 이마저 보험사마다 부실을 우려해 대출 허들을 높이거나 아예 받아주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농협은행이 HUG 안심 전세대출을 중단했다. 다른 은행들도 축소 또는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세입자가 중간에 전출하면 대위변제할 필요가 없다는 면책 조항 때문에 주소지를 중도에 잠시 옮긴 것만으로 은행이 책임을 떠안는 경우도 많았다”며 “최근 이 부분이 개선됐지만 분쟁거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임대차 보호법 이후 ‘진퇴양난’

은행 대출 담당자들은 지난해 7월 임대차보호법 개정 이후 문제의 불씨가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임대인이 반대하더라도 임차인이 원하면 계약 만료 이후에도 한차례 계약을 더 연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초월한 ‘깡통 전세’가 늘어난 것도 문제다. 집주인이 집을 처분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 사실을 확인하는데 협조를 잘 해주지 않고, 채권 보전 조치를 하는데 대해 거부감도 강해졌다”며 “임대인은 내보내려고 하는데 임차인은 버텨 중간에서 난처해지는 사례도 늘었다”고 말했다.

HUG가 집주인 대신 갚아준 금액도 급증세다. HUG의 대위 변제액은 2016년 34억 원, 2017년 74억 원에 머물렀지만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792억원, 342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1월까지 4034억원까지 치솟았다. HUG측은 “대위 변제금 추이는 각 임대인의 상황과 전세 시장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며 “깡통전세로 인한 대위변제 증가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과 HUG간 분쟁이 심화될수록 피해는 서민층에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안심 전세대출 판매를 꺼릴수록 저소득 청년층들이 대출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소람/김대훈/배정철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