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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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를 떠받치기 위해 시장에 온갖 공급감소 신호를 보내고 있는 영향이 크다. 일각에선 원유 수요가 회복된 것이 아닌 만큼 최근 상승세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유가 11개월내 최고

7일 국제 원유시장 벤치마크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4.51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은 51.03달러에 손바뀜됐다. 두 유종 모두 작년 2월 이후 최고가를 냈다. 지난 1일 대비로는 일주일만에 각각 5% 가량 가격이 올랐다. WTI는 전날엔 50.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1개월만에 종가 기준으로 배럴당 50달러를 넘었다.

미국 원유재고가 예상 외로 크게 줄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대규모 자진 감산에 나선다는 소식이 유가를 '쌍끌이'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지난주 미국 원유 재고가 약 801만배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10만배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예상치(180만배럴)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재고가 줄어들었다.

지난 5일엔 석유수출국기구(OPEC) 좌장국 격인 사우디가 다음달부터 2개월간 하루 100만배럴씩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했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사우디 경제와 국제 원유시장을 지원하는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같은날 OPEC 소속 13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2~3월 생산량을 이달 대비 최대 하루 15만배럴 규모만 늘리기로 했다. 산유량 일평균 170만배럴 가량을 늘리려던 기존 계획보다 훨씬 보수적인 움직임이다.

사우디가 적극 '공급감소 신호'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최근 미국에 대한 공급량도 줄이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주에 미국이 사우디 원유를 수입하지 않았다고 7일 보도했다. 미국의 사우디 원유 주간 수입량이 0을 기록한 것은 1985년 9월 이후 35년만에 처음이다.

통상 사우디에서 출발한 유조선이 미국 각 항구에 닿는데엔 6주 가량 걸린다. 미국과 사우디간 원유 거래가 작년 11월께 확 줄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카림 파와즈 에너지부문장은 "역사적인 일이긴 하지만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며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정유시설 가동이 낮은 수준이라 생긴 일"이라고 분석했다.

카림 부문장은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더 줄이려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미국의 사우디산 원유 수입 급감에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시장에 일종의 신호를 보내기 위해 미국으로 수출량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 입장에선 미국에 수출량을 줄이는게 시장에 공급 감소를 알리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사우디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를 통해 원유를 수출한다. 아람코는 지분 거의 전부를 사우디 왕실이 소유한 기업이라 원유 생산량이나 수출량을 집계한 자체 자료를 시장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 실적도 80여년간 비공개에 부쳤다가 2019년 기업공개(IPO)로 공개 의무가 생겨 발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정부기관이 원유재고와 수입량 등을 주간 기준으로 발표한다.

"수요 회복은 아니다…펀더멘털 약해"

일각에선 OPEC+ 발표 이후 유가 상승세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원유시장 공급 긴축에 대한 낙관론이 시장에 퍼져 원유 선물가격이 최근 수개월내 최고 수준”이라며 “그러나 각종 기술 지표를 따져보면 상승세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수요 약세도 원유시장 펀더멘탈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5일 “OPEC+이 기존 계획 대비 감산량을 확대한 이유는 사우디 등이 최근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 중인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에너지 소비가 상당히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이달과 다음달 세계 원유 수요 전망치를 지난달 내놓은 일평균 9350만배럴에서 일평균 9250만배럴로 100만배럴 하향 조정했다.

원유 재고량이 ‘깜짝 감소’한 것도 실제 수요 회복으로 해석하기엔 이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통상 연말엔 원유재고가 평시보다 더 줄어든다. 정유기업들이 절세를 위해 연중 쌓아둔 원유 재고를 연말에 줄여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