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CFO Insight] 북쉘프-머니볼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머니볼>(2011)의 흥행 덕분에 2002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기록한 기적과 같은 스토리는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머니볼 신화’를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이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그동안 야구계에서 외면받았던 아웃사이더들로 팀을 꾸리고,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리그 우승에 도전한다’

2002년 애슬레틱스의 선수 연봉 총액은 4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가장 부자 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애슬래틱스는 이 돈으로 그해 메이저리그 최다승인 103승을 기록했다.

20연승 기록을 세우며 아메리칸 리그 최다 연승 기록을 다시 썼고, 비록 첫 번째 관문인 디비전 시리즈에서 멈추고 말았지만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에게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다.

이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던 인물이 빌리 빈이다. 빌리 빈은 원래 최고의 유망주라는 기대를 받으며 프로 리그에 입문한 선수였지만 선수 생활 동안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상당 기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묻혀 지내야 했으며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뒤에도 경기장에서 뛰는 시간보다는 벤치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이렇게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애슬레틱스의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진정한 자질이 빛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빌리 빈은 실패로 끝난 선수 생활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었는데 그중 하나가 ‘겉모습이 아닌 객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선수의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4㎝가 넘는 당당한 체구와 잘 생긴 외모, 호쾌한 스윙과 빠른 발 덕분에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막상 실제 결과는 좋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에서 찾아낸 교훈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겉모습 때문에 소외받고 저평가된 선수들 중에서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일에 집중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이었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실제 능력보다 저평가돼 낮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을 영입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2002년 애슬레틱스의 주축 멤버 중 상당수가 다른 팀에서 방출됐거나 몇 년 동안이나 마이너리그에서 묻혀 지냈던 선수들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원래는 촉망받는 젊은 포수였지만 팔꿈치 신경 파열로 더 이상 포수로서 뛸 수 없게 돼 기존 팀에서 방출된 스콧 해티버그, 어느 투수보다도 땅볼 유도 능력이 좋았지만 공을 던질 때 손가락이 땅에 닿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던지는 우스꽝스러운 투구폼 때문에 마이너리거로 머물러야만 했던 채드 브래드포드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애슬레틱스 불펜 투수 중에서는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선수도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내반족증이라는 다리가 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짐 메시어였는데 마운드에 오를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걸음걸이가 불편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빌리 빈에게는 그에게 장애가 있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빌리 빈이 선수를 영입할 때 적용했던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 선수가 팀에게 저비용 고효율의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가’만이 그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었다.

빌리 빈이 평소 신인 선수들의 영입을 책임진 스카우터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하나 있다. “여러분은 지금 청바지 모델을 찾고 있는 게 아닙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그 선수가 갖고 있는 진짜 능력만을 보라는 말이다.

<머니볼>(Money Ball)은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루이스가 빌리 빈과 다른 프런트 직원들, 선수들을 취재해서 쓴 책이다. 머니볼 신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요인들을 차분한 필체로 분석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놀라운 스토리를 써나가던 2002년 시즌 당시에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전해진다.

야구에 대해 쓴 책이지만 이 책은 나온 뒤에 경제경영 분야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이야말로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비결이니까 말이다. 2021년 새해를 맞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