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는 자신의 선조가 1658년 네덜란드에서 희망봉에 도착했다는 더크 러우 남아공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장이 해줬다.
이번 방문 목적은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남아공 토착 백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어트레커 기념관은 가로, 세로, 높이 모두 40m의 정방형으로 이뤄진 화강암 건물이다.
1835∼1854년 현 남아공 남단 케이프 콜로니에서 영국의 박해를 피해 내륙으로 대장정을 한 보어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1949년 지어졌다.
보어인은 주로 네덜란드계 후손으로 남아공에 정착한 유럽 대륙 출신 백인들을 말한다.
보어트레커는 미국의 서부 개척사에 비견되기도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어 대장정에 참여한 백인 모자들 상이 맞아준다.
기념관 안내원인 아니타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2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고 말했다.
주중에는 중국인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고 주말에는 현지 백인 관람객들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들어가면 정숙을 뜻하는 안내 말 가운데 한자어 '靜'(정)이 눈에 띄었다.
아니타는 "지금은 관광객이 뚝 떨어진 상황"이라면서 수개월 간의 국경 봉쇄령이 완화돼 관람이 가능한 이후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보어트레커 기념관은 일종의 영묘다.
해마다 12월 16일 정오에 돔 천장의 구멍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내려와 정확히 이 문구 위를 비춘다.
12월 16일은 1838년 블러드리버 전투에 참여한 보어인들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건물은 고대 이집트 건축양식을 참고했다고 한다.
건물 내부에는 세계 최장의 대리석 부조물(frieze)이 사면으로 둘러 있다.
속도는 느린 대신 힘은 더 좋았을 듯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니 사방이 툭 터져 프리토리아 일원을 둘러볼 수 있다.
꼭대기 내부 아래로도 지하까지 툭 터져 조금은 아찔했다.
관광차 왔다는 그는 "무슨 동기에서 대장정에 나섰는지를 보고 있다"면서 "당시 대장정이 고통스러웠겠지만 흥미로운 점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작을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했다.
1899∼1902년 남아프리카전쟁 혹은 앵글로-보어 전쟁이라 알려진 것부터 풀어갔다.
소략하면 보어인들이 지금의 케이프타운 영국 식민지에서 쫓겨 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 내륙 쪽으로 왔지만, 영국 식민지배자들과 이해충돌이 심해져 전쟁이 터졌다.
당시 대영제국 진영에 맞서 보어인 쪽에는 러시아, 프랑스 등이 가담해 사실상 1차 세계대전 전초전의 성격을 띠었다고 한다.
대영제국은 보어인들을 무차별 진압해 집과 초지를 불사르고 가축들을 몰살하는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이후 1910년 두 개의 보어인 공화국과 두 개의 영국 식민지로 구성된 남아프리카연방을 거쳐 1961년 영연방 탈퇴 등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남아공이 출범했다.
아울러 백인과 문화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현지 흑인들과 섞이지 않고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시행됐다.
넬 큐레이터는 "대영제국에 짓눌린 피식민의 역사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흑인에 대한 소수 백인들의 두려움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식민지로 있을 때는 일제가 조선인에게 한글을 못 쓰게 했듯 학교에서 아프리칸스어 사용을 금지했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보어트레커 기념관 방문은 우리의 피식민 경험에 비추어 남아공 토착 백인들의 역사적·심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간헐적으로 내리던 비가 그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