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개미들이 가보지 않은 길
만나기만 하면 다들 주식 얘기다. 생전 주식 투자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묻는다.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 아니면 그냥 증권사로 달려간다. “삼성전자 사주세요”를 외치면서. 작년부터 2030 밀레니얼 세대에서 주식열풍이 불더니, 요즘은 맘카페도 난리다. 코스피지수가 3100을 훌쩍 넘고, 삼성전자가 하루 7%, 현대차가 19% 급등하는 시장을 보면서 주식 한 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부동산 시장에 이어 증시에서도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이다.

증시가 오르는 이유는 충분하다. 시중에 돈이 넘친다. 금리가 워낙 낮아 예금엔 눈길도 가지 않는다. 부동산은 규제에 막혀 있다. 또한 코로나19를 계기로 세상 변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비대면, 친환경, 헬스케어 등을 화두로 한 미래산업이 성큼 다가왔다. 산업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소재 바이오 등 유망 분야에 한국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황금 포트폴리오’라는 얘기가 나온다. K팝·K드라마 등 문화산업의 파워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국 증시는 늘 외국인들에게 휘둘려왔다.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외국인이 팔면 떨어졌다.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외국인은 항상 유동성 좋은 한국 주식을 먼저 팔았다. 그래서 한국 증시는 ‘외국인의 현금인출기(ATM)’란 소릴 들었다. 이를 바꿔놓은 것이 ‘동학개미’들이다. 외국인의 ‘팔자’를 압도적 매수세로 받아내며 한국 증시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해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주요 20개국 중 1위였다. 새해 들어서도 파죽지세다. 작년 3월 전저점(1457.64) 대비로는 116% 올랐다.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 그럼에도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시장이 조정받길 기다리는 자금만 130조원에 달한다. 조정이 와도 길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우려되는 모습도 있다. ‘빚투’가 급증했다. 연초 1주일 새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은 4500억원 급증했다. 주식투자를 위해 빌린 돈이 많다는 분석이다. 장중 시장 변동폭도 커지고 있다.

주가가 상승할 땐 어디가 정점일지, 하락할 땐 어디가 바닥일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다 보니 오를 땐 탐욕이, 떨어질 땐 공포심이 발동한다.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은 “성공적인 투자에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올바른 지적 체계를 쌓고, 그런 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감정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투자원칙과 체계를 세워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감정조절이 어려운 게 사람이다. 목표수익률을 달성해도 더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에 이익실현 기회를 놓치고, 떨어질 땐 원금에 대한 미련 때문에 손절매를 못 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빚낸 돈, 전세금 뺀 돈이라면 냉정한 판단이 더 힘들다. 상승여력이 남았다고 하는 지금이 투자목적과 원칙을 생각해 보고, ‘리스크 관리’에 들어갈 때다. 주식계좌를 처음 튼 동학개미들에겐 또 다른 ‘가보지 않은 길’이다.

생업에 집중하며 주식 투자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종목으로 위험을 분산해 투자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시장 등락에 신경 안 쓰고 우량주를 저축하듯 꾸준히 매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투자를 ‘업(業)’으로 삼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주식형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로 운용한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경우 이번 상승장에서 수익률이 꽤 양호했다. 저금리 시대, 노후자산을 불리는 데 주식 시장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미국은 전체 펀드 보유가구의 82% 정도가 퇴직연금 제도를 통해 펀드에 투자한다. 장기투자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 시장의 안정성도 높아진다. 이번 기회에 노후대비 연금 자산 굴리기에 대한 관심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