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산업 지각변동
4500편 물량공세로 시장 장악
유료가입 362만명…45배 급증
K콘텐츠 글로벌 진출 '날개'
제작사들엔 기회…협업 활발
킹덤·스위트홈 등 전세계 흥행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업체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2015년 한국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듬해 1월 7일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헤이스팅스의 얘기는 현실이 됐다. 많은 사람이 넷플릭스로 영화와 드라마 등을 즐긴다. 유료 가입자는 362만 명. 첫해 8만 명 수준에서 45배 늘었다. 190개국의 다양한 콘텐츠를 매달 1만2000원(스탠더드 기준)만 내면 볼 수 있는 다양성과 편리함이 통했다.
국내 콘텐츠산업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K콘텐츠의 파급력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아시아 등 특정 지역에서 일부 작품이 인기를 얻던 데서 벗어나 넷플릭스를 통해 다수의 작품이 세계 각국에서 흥행하고 있다. 국내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면 OTT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극장과 지상파 방송사 등 전통 플랫폼은 위기에 처했다.
한류 수혜…제작사들 “새로운 기회”
넷플릭스는 그간 총 7700억원을 투자하며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폈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34.3% 늘어난 3331억원을 투자했다. 진출 첫해 투자액(150억원)의 22배를 넘는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11일 기준 국내에서 4536편의 작품을 공급하고 있다.넷플릭스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다. 5년 동안 70여 편을 제작하며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펼쳤다. 2017년 600억원을 투자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제작한 데 이어 2019~2020년엔 ‘킹덤’(200억원), 지난달엔 ‘스위트홈’(300억원) 등 대작도 잇달아 선보였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국내 창작자들과 협업 방안을 꾸준히 찾으며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인기작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은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했다. ‘킹덤’은 미국, 유럽 등에서 K좀비 열풍을 일으켰다. ‘스위트홈’은 공개 직후 세계 넷플릭스 순위 3위에 올랐다.
국내 제작사들에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작품을 국가별로 수출하는 대신 넷플릭스가 진출한 190개국에 한꺼번에 소개할 수 있어서다. 넷플릭스가 대규모 제작비를 지원하고 소재나 표현의 제약도 없어 좀비, 괴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콘텐츠 수출에 따른 파급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덕분에 최근 넷플릭스엔 매주 80~100여 편의 국내 작품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극장 건너뛰고 넷플릭스 직행 잇달아
막강한 플랫폼 출현으로 전통 플랫폼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있다. 극장과 지상파 방송사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콜’ ‘차인표’ 등 극장 개봉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만 상영하는 국내 영화가 잇달아서다.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승리호’도 다음달 5일 넷플릭스에서만 공개된다.가정에 TV를 두지 않거나 케이블 채널을 해지하고 OTT를 이용하는 ‘코드 커팅(cord cutting)’ 현상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넷플릭스와 드라마 작업을 하려는 외주제작사도 늘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중파 TV에서 드라마를 방영하려면 주요 시간대 편성을 어렵게 따내야 하고, 인기 배우를 섭외해야 하지만 넷플릭스에선 이런 어려움이 없어 넷플릭스행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9월 별도 법인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세웠다. 오는 3월부터는 4800평대의 콘텐츠 스튜디오도 운영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