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의원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백신을 백신 추정 주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늦다는 야당의 지적을 무력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주당이 이런 '신박한 단어'를 만들어내는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행 피소가 알려진 뒤 민주당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논란이 일었는데, 여성단체 출신인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피해호소인 단어 사용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사건을 프레이밍 하기 위한 새로운 네이밍"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프레임은 생각의 기본 틀 또는 뼈대입니다.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인간은 프레임에 갇힌다"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생각만큼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전제입니다.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며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라며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주요 정책에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검찰 개혁', '언론 개혁', '공정 경제' 등이 일종의 프레임입니다. 개혁이나 공정이라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용어를 쓰면 해당 정책의 디테일과는 상관없이 검증과 토론이 어려워집니다. 이들 정책을 반대하면 '반개혁, 불공정 세력'으로 쉽게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라고 부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가 아니라 무기로 추정되는 발사체라는 단어를 쓰면 북한의 위협을 희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피해호소인이나 백신 추정 주사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단어를 동원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사안의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을 쓰면 성폭행 주장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백신 추정 주사 역시 마찬가집니다.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당 인사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국민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하다는 겁니다. 장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후 당장 온라인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마루타로 만드는 것이냐"는 비아냥 섞인 댓글이 많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하면서 직접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백신 추정 주사라는 표현까지 만들어 야당의 공격에 응수했지만, 오히려 백신 5600만명분을 확보했다고 자랑하는 문 대통령과 정부를 우습게 만드는 꼴이 됐습니다. 장 의원은 결국 해당 글을 삭제했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