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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주식=가치주’라는 통념이 있다. 신흥국 증시는 내수주, 원자재주 등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올 들어 이 통념이 깨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중국·인도·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제2의 아마존’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이 새로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 여력이 크다고 내다본다. 이미 기술이 크게 발전한 선진국과 달리 성장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신흥국의 ‘이머징 테크’ 기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머징 테크’, 전통산업 제쳐

지금까지 신흥국 주식은 전통산업 위주였다. 신흥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는 기업은 주로 은행, 원자재, 제조업 등이었다. 이 때문에 신흥국 증시는 가치주가 대세일 때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내기도 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런 상식을 깨버렸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등 중국 플랫폼 기업은 2016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국 CSI300지수에서 성장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새 3배 이상 커졌다. 정보기술(IT), 헬스케어, 커뮤니케이션 업종 비중은 2010년 말 7.1%에서 지난해 말 22.8%로 늘어났다. 반면 금융, 산업재, 소재, 에너지 업종의 비중은 같은 기간 75.5%에서 48.8%로 줄어들었다.

인도 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도 증시의 50대 우량 기업으로 구성된 인도 니프티50지수에서 신산업이 시총 상위권으로 도약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인 인포시스, HCL테크놀로지, 통신 기업인 바르티 에어텔은 2018년 대비 각각 3계단, 6계단, 11계단 순위가 올라갔다. 반면 담배·의류 등을 생산하는 ITC, 금융기업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의 순위는 밑으로 추락했다.

신흥국 테크 기업은 이제 막 시작

브라질에서는 코로나19가 변화에 속도를 붙였다. 브라질 광산 기업 발레는 라틴아메리카 시장에서 부동의 시총 1위였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자 ‘남미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메르카도리브레 주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3월 저점 대비 253% 급등하며 발레를 제치고 시총 1위에 등극했다. 시총은 796억달러(약 87조원)로 미국 이베이의 두 배 규모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선 싱가포르 온라인 기업 씨(Sea)가 3월부터 436% 뛰었다. 인도네시아 최대 민영은행 뱅크센트럴아시아를 밀어내고 아세안 시장 시총 1위를 차지했다.

신흥국의 기술 투자는 이제 막 시작됐다. 가장 성장이 빠른 초기 단계라는 의미다. 중국 외 신흥국의 기술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1990년대에 설립된 1세대 신흥국 기술 기업 안에서 중국 이외 국가 기업은 12%에 그쳤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설립된 기업을 기준으로 보면 그 비중은 47%로 늘어난다. 박범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신흥국에서 기술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존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시장을 개척하기도 좋다. 모바일 간편 결제 기술은 미국에서 개발됐지만 인도네시아·중국·인도에서 더 널리 보급됐다. 신용카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같은 경쟁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세안과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이커머스 기업에 기회다. 아직 이커머스 침투율이 5% 내외에 그치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신흥국에서 인터넷 보급률이 낮고, 인구수는 많다는 점은 이커머스 산업의 잠재 성장 여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신흥국 아마존’ 모아놓은 ETF

메리츠증권은 세계 증시를 주도하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 외에도 성장 가능성이 큰 신흥국의 이머징 테크 기업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개별 주식의 변동성이 부담된다면 관련 기업을 모아놓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EM 인터넷&이커머스 ETF’(EMQQ), ‘크레인셰어즈 EM 컨슈머테크놀로지인덱스 ETF’(KEMQ), ‘글로벌 X EM 인터넷&이커머스 ETF’(EWEB) 등이 추천 리스트에 올랐다. 신흥국 시장 구조상 중국 기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신흥국 플랫폼 기업을 모아놓은 KEMQ ETF는 3월 저점 이후 94% 뛰었다. 각 지역에서 제2의 아마존이라 불릴 만한 기업이 포함돼 있다. 메르카도리브레(아르헨티나) 핀둬둬 JD닷컴 텐센트 넷이즈 알리바바 메이퇀(중국) 씨(싱가포르) 내스퍼스(남아공) 스톤코(브라질) 등을 담고 있다. 한국 네이버의 비중도 3.27% 정도 된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