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초상 담은 사진집 발간한 프랑스 사진작가 글라디외
인물사진 촬영 목적으로 2017년 봄∼2019년 가을 5차례 방문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광장에서,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농장에서, 병원에서, 동물원에서, 수영장에서, 가정집에서….
북한 당국의 선전물에 등장하는 모델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망은 프랑스 사진작가를 '은둔의 왕국'으로 이끌었다.

최근 3년 반 사이 북한에 5번 다녀온 스테판 글라디외(52)에게 북한은 시계가 여전히 1970년대에 멈춰있는 듯한, 공사장에 쌓여있는 모래조차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있어야 하는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평양, 개성, 원산, 남포, 사리원, 금천 등에서 만난 수많은 북한 주민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어떤 지시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정면을 바라보고 렌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을 때 대부분이 무리에서 빠져나와 홀로 카메라 앞에 서기를 주저했고, 카메라 앞에 서더라도 대개 차렷 자세를 취했고 미소를 지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얼굴에서는 표정을 지우느라 바빴다.

북한에 갈 때마다 매번 다른 곳에서 매번 다른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냈지만, 복장에서도, 머리모양에서도, 자세에서도, 표정에서도 개성을 찾는다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도 같았다.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사진을 찍을 때 대낮에도 플래시를 터뜨리는 그의 촬영기법은 비현실성을 더욱 극대화했다.

플래시는 배경과 인물을 분리하는 듯한 효과를 줘 마치 합성사진 같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의 손에서 탄생한 사진 속에 담긴 장소와 사람은 모두 실존했다.

글라디외의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조차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방 국가에서 온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북한 주민의 일상을 책으로 엮어낸, 30년이 넘는 경력의 사진작가 글라디외를 지난 5일 파리 근교에 있는 자택 겸 작업실에서 만났다.

글라디외 역시 다른 대부분의 외국인처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구글에 나오는 정보조차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없는 북한이 뿜어내는 '판타지'에 끌렸다고 한다.

"국제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와중에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이 독재국가는 왜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물론 북한에 발을 들이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고통받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온 그는 2002년 처음 북한의 문을 두드렸다가 거절당했다.

북한 측이 거절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과거 루마니아, 벨라루스와 같은 나라에서 사진을 찍다가 체포당했던 전력을 같은 공산권 국가끼리 공유했으리라 막연히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북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파리에 나와 있는 북한 대표부와 연결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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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갈 때마다 매번 비자를 받아야 했고 한 번의 방문 일정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북한 대표부를 4∼5차례씩 찾아야 하다 보니 준비에만 수개월이 걸리기 일쑤였다.

어렵게 찾아간 곳에서도 운신의 폭은 넓지 않았다.

2017년 4월부터 2019년 10월 사이 총 다섯 차례 북한을 방문해 짧게는 열흘에서 길게는 보름씩 북한에 머물렀고, 언제나 북한 당국이 지정한 가이드 2명이 동행한 상태에서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북한 당국이 사전에 허락한 장소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세워 사진을 찍기로 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도는 북한의 선전물과 유사해 좀처럼 외부인을 받지 않는 나라에 결국 방문이 가능했다고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국의 허가와는 별개로 북한 주민들은 인물 사진, 특히 자신이 혼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진을 촬영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듯 불편해하는 내색이 뚜렷했다.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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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제안했을 때 4명 중 1명꼴로 거절했다.

특히 단체 생활을 하는 학교와 공장에서는 거절당하는 확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주변, 특히 상부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촬영 후에는 늘 사진을 보여줬는데 사진을 갖고 싶다거나, 썩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찍자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이러한 경직된 반응은 개인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촬영하는 문화가 부재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글라디외는 설명했다.

실제로 그가 방문한 거의 모든 장소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지언정 정작 그 장소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제외하곤 글라디외가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검열하는 절차는 없었다.

언제 어딜 가든 가이드와 함께했기에 그가 무슨 사진을 찍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걷는 듯한 순간을 포착하기 좋아하는 글라디외는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평양 동물원에서 만난 젊은 부부와 그 아들을 찍은 것을 꼽았다.

사진집의 맨 첫 장에 실린 이 사진 속에서 아내는 선글라스를 쓰고, 다양한 색깔의 꽃무늬가 그려진 상의를 입은 채 서 있다.

그 옆에 똑같은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남편은 칙칙한 색깔의 작업복 차림이다.

한 프레임 안에서 아내는 북한의 현대와 변화를, 남편은 과거와 전통을 각각 상징하면서 이루는 대조가 글라디외가 보여주고자 하는 가치들을 표상하고 있었다.

글라디외는 "통제가 일상이고, 자유가 없는 북한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비치고, 나 역시 거기에 살라고 하면 살 수 없겠지만 우리는 2천5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그곳에 실재한다는 점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佛사진가의 北엿보기 "개성 없어도 2천500만 개인은 존재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