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동구에 사는 황모씨(35)는 최근 건강이 악화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당분간 식구들과 함께 경기도에 있는 본가에 들어가 살기로 마음먹었다. 어렵게 아내를 설득했지만 난관은 따로 있었다. 만 65세 미만인 어머니가 소유한 아파트에 들어가 살면 자동으로 세대가 합쳐져 무주택 세대주 청약 자격을 잃는 게 문제였다. 황씨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생계도 독립했는데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세대로 묶는 게 말이 되느냐”며 “청약 때문에 불효자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거주지 같은 가족은 한 세대

다주택자를 옥죄는 부동산 정책이 쏟아지고, 세금 제도 개편이 이어지면서 각종 정책에 인용되는 ‘세대’의 기준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가족의 형태와 구성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데 세대와 세대 분리 기준이 이를 반영하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혼 후 다시 부모와 함께 살거나, 타지에 살던 형제자매가 직장 문제로 같이 살게 될 경우 각자 독립된 생계가 가능하더라도 현행법상 거주지가 같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세대로 묶인다.

이들은 취득세를 낼 때도 하나의 세대로 분류돼 2주택 이상 구매 시 중과 대상이 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만 주택이 있어도 모두가 유주택자로 취급돼 무주택 세대주 청약 자격을 얻지 못한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대 분리 기준을 완화해 거주지가 같은 가족도 독립 생계 등이 인정되면 세대 분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문서인 주민등록 사무편람에선 세대를 ‘주거 및 생계를 같이하는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2년 주민등록법이 제정될 당시 국민의 신원을 확인하고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動態)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을 일컫는 하나의 단위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생계를 달리해도 주거만 같으면 같은 세대로 보고 합산 과세하는 사례가 늘면서 세대 기준이 가족 간 동거를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꼼수 절세’ 수단으로 악용 우려”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세대 분리 기준 완화가 ‘꼼수 절세’의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주택 청약 제도에 큰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다. 당장 취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세대를 쪼개 집을 구매하는 다주택자를 막기 어렵다. 세대 단위로 지급하는 소규모 농가 직접지불금을 세대를 나눠 추가로 타내는 등 지원금 불법 수급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주택 청약 시장에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대 분리 기준 완화 시 부모와 같이 살면서도 독립 생계를 인정받아 무주택 세대주 자격을 얻는 이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세대 개념을 인용하고 있는 법령이 79개에 달해 섣불리 제도를 바꿨다간 큰 혼란을 빚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세대 제도의 허점을 지적한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일 거주지에 2개 이상의 세대를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주민등록법 일부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양 의원은 “가족 구성 형태의 다양화와 1인 가구 증가 등 사회 변화를 반영한 세대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법안이 통과되면 시행령과 주민등록 사무편람을 고쳐 세대와 세대 분리의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당초 행안부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주거가 독립되거나 △세대주와 형제자매인 경우 △생계가 독립된 경우에 세대 분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독립 생계’ 조건은 제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 세대

거주 및 생계를 같이하는 집단. 현행법상 거주지가 같은 가족은 세대 분리가 허용되지 않는다. ‘독립 거주’와 ‘독립 생계’를 증명할 경우 분리가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기준도 불명확한 상황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