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노동이사제 추진을 선언하며 해외 주요국에서 이미 운영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에만 있는 제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업 체계가 독일과는 다른 만큼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은 근로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감독이사회는 세부적인 경영전략을 짜는 경영 이사회를 견제하는 장치로, 경영 이사회 구성원을 임명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진다. 하지만 이 같은 독일의 제도는 유럽 내에서도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 기업인 사이에서도 기업의 유연성과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1990년대 이후 독일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하르츠개혁을 통해 근로자의 경영 참여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독일보다 느슨한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놓고 있다. 스페인, 그리스 등 4개국은 공기업에만 노동이사제를 적용토록 하고 있다. 제도가 없는 국가도 많다. 벨기에, 이탈리아, 영국 등 12개 국가는 노동이사제를 전혀 채택하고 있지 않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는 관련 보고서에서 “유럽에서도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경영 참여가 제한되는 등 근로자이사제가 축소되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회사 체계가 다른 유럽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곤란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은행 자본이 중심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주주 자본을 중심으로 기업이 돌아가기 때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기업의 장기 주주가치에 긍정적인지에 대해선 도입을 본격화한 유럽에서조차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한국과 기업 구조가 비슷한 일본이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 끝에 제도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한 결과로 평가된다. 한경연은 “일본 노동법학자들이 산별노조 체계인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동이사제를 기업별 노조체계인 일본에 도입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강진규/황정환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