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한 재개발구역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북 한 재개발구역의 모습. 연합뉴스
재개발사업의 분양자격을 두고 법원별로 엇갈리는 판단이 나오는 가운데 올해 중 대법원의 교통정리가 이뤄질 전망이다. 판결에 따라 조합원에게 새 아파트를 배정하는 근거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어 정비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같은 사안 두고 다른 판결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부산 온천4구역의 일부 조합원들이 제기한 아파트수분양권확인소송을 특수1부에 배당하고 심리를 진행하는 중이다. 1심에서 조합원들이 패소한 뒤 2심에서도 기각돼 상고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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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조합원들의 분양자격이다. 소를 제기한 조합원들은 조합설립 이후 다주택자의 부동산을 각각 매수한 이들이다. 그러나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할 때 이들을 분양대상자가 아닌 현금청산대상자로 분류했다. 새 아파트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조합설립 이후 다주택자의 물건(다물권)이 거래돼 여러 사람이 소유하게 될 경우 한 사람을 대표조합원으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2010년 2월 이를 근거로 대표조합원에게만 분양자격이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재개발조합들은 그동안 이 같은 해석에 맟춰 다물권에 대한 분양자격을 정리해왔다.

현금청산자가 된 조합원들은 재개발구역 내 부동산을 소유한 모두에게 각자 분양자격이 있음에도 부당하게 배제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조합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조합설립 인가 이후 거래를 통해 소유권을 갖게 된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각자 분양자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패소한 조합원들은 항소가 부산고등법원에서 기각된 뒤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최근 광주고등법원에선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다는 점이다. 광주고법은 광주 학동4구역 조합원들의 분양자격과 관련한 소송에서 대표조합원에게만 분양자격을 인정한다는 1심 판결을 깨고 모두에게 분양자격을 인정했다. 도정법엔 조합설립 인가 이후 양수한 이들의 분양자격을 박탈할 명문 규정이 없고, 조합원으로 인정되지 않은 토지등소유자이더라도 분양신청 자체는 가능하다는 게 광주고법의 판단이다. 다물권자의 개별 분양자격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비슷한 사안을 두고 부산과 광주에서 상반되는 판결이 내려진 만큼 대법원의 교통정리가 필요해진 셈이다.

대법원 판결 ‘촉각’

정비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중이다. 대법원이 광주고법처럼 다물권에 대해 개별 분양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릴 경우 재개발사업 진행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어서다. 이 경우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한 조합이더라도 개별 분양자격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계획을 변경하는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르면 상반기 중 대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전문변호사인 김정우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는 “개별 분양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정비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론 분양자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는 도정법 개정까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분쟁을 막으려는 조합들은 법 개정 전에 정관을 개정해 개별 분양자격 인정을 막으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에서 개별 분양자격이 인정되면 투기 수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재개발구역의 부동산을 매집했다가 사업이 진척된 이후 비싼 값에 되팔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조합원이 늘어나는 만큼 일반분양분이 줄어드는 등 사업성에 타격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