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와인엔 부르고뉴·샴페인엔 플루트…술맛나게 하는 술잔의 마법
와인이 집으로 들어왔다. 음식을 더 맛있게, 이야기는 더 풍성하게 하는 일상 속의 한 잔. 낯선 언어로 맛을 표현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잊어도 된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와인은 생물과 같아 마시는 잔과 와인의 온도, 열어두는 시간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도 있다. 우리집을 최고의 와인바로 만드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온도에 민감한 와인, 어울리는 잔은 따로 있다

햇와인엔 부르고뉴·샴페인엔 플루트…술맛나게 하는 술잔의 마법
와인은 온도에 민감하다. 손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샴페인잔은 둥근 모양의 ‘쿠프’와 길쭉한 모양의 ‘플루트’가 있다. 플루트는 샴페인에 이상적이다. 상큼한 화이트 와인과 포트와인, 마데이라, 칵테일 같은 식전주 등에도 어울린다. 쿠프는 루이 15세가 사랑하던 여인 퐁파두르 부인의 왼쪽 가슴 모형을 본떠 만들었다. 모양은 예쁘지만 샴페인의 향과 버블을 충분히 즐기기엔 부족하다.

몸통(볼)이 크고 입술이 닿는 위쪽(립)이 좁은 ‘부르고뉴’ 와인잔은 화이트 와인과 생산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와인에 잘 어울린다. 와인향을 잘 모아주기 때문에 향을 느끼기에 좋다. 몸통이 좀 더 넓은 ‘그랑 부르고뉴’는 값비싼 부르고뉴 와인에 잘 맞는다. 향이 모였다 올라오며 숙성된 향인 부케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몸통이 긴 튤립형 ‘보르도’ 잔은 모든 와인에 어울린다. 산화가 빠른 화이트 와인은 예외다. 단 하나의 와인잔을 선택해야 한다면 보르도잔이나 보르도보다 조금 작은 다목적 와인잔을 고르는 게 좋다. 너무 작은 잔은 와인의 맛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너무 큰 잔은 산화가 쉽다. 세척법도 중요하다. 주방용 세제, 식기세척기는 피해야 한다. 와인을 마시자마자 뜨거운 물로 닦는 것이 좋다.

(2) 수집에 취미가 생겼다면 셀러는 필수!

와인 셀러는 10병 정도 들어가는 소형부터 200병 들어가는 대형까지 종류가 여러 가지다. 대형일수록 냉각 방식이 일반 냉장고와 비슷해 고장이 적다. 와인 셀러를 꼭 살 필요는 없다. 실내온도 15~25도 정도의 어둡고 서늘한 곳을 찾아 눕혀서 보관하면 된다. 김치냉장고 한 칸의 온도를 와인 셀러 온도로 맞춰 쓰는 사람도 많다. 단 김치를 보관한 적이 없는 칸이어야 한다. 일반 냉장고의 채소칸도 와인 전용으로 쓸 수 있다.

(3) 오프너·디캔터…갖춰두면 좋을 기본 소품들

와인을 즐기기 위해 준비해야 할 기본 소품은 오프너와 디캔터다. 스크루를 돌려 넣은 뒤 양 날개를 내려 코르크를 뽑는 ‘윙 스크루’는 값이 싼 대신 고장도 쉽게 난다. 병따개가 달려 있는 ‘소믈리에 나이프’는 지지대가 2단으로 돼 있어 코르크 마개가 휘어져 중간에 끊기는 것을 방지한다. 힘이 적게 들고 휴대하기 좋아 가장 일반적인 오프너로 자리잡았다. 오래된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아소 오프너’를 쓴다. 스크루 없이 코르크 마개를 뚫지 않고 얇은 칼날을 코르크 사이에 밀어넣어 빼낸다. 코르크 마개가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는 도구다.

(4) 와인의 맛과 향을 깨우는 카라파주와 디캔팅

와인은 숨을 쉰다. 산소를 만나면 맛이 살아나고 늙어간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 약스파클링 와인, 샴페인 등은 마시기 직전에 따라서 마시면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스파클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와인은 마시기 1시간 전에 열어두면 좋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칠레 등에서 온 타닌이 강한 레드와인, 풀보디 와인은 마시기 3시간 전, 길게는 6시간 전부터 따놓는 것이 좋다. 오크통에서 숙성돼 농도가 진하고 강한 와인들은 공기와 잠시 접촉하면 맛이 좋아진다. 와인을 깨우는 대표적인 방법은 ‘카라파주’와 ‘디캔팅’이다. 둘 다 손잡이가 없는 밑이 넓은 물병 ‘카라프’에 옮겨담는 것이 기본. 디캔팅이 와인 병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을 분리하는 방식이라면 카라파주는 와인을 산소와 접촉시켜 맛을 깨우는 방법이다. 어린 와인은 카라파주를, 오래된 와인은 디캔팅을 한다.

(5) 비빔밥엔 로제·갈비찜엔 레드 ‘환상의 마리아주’

와인과 음식의 궁합 ‘마리아주’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해산물에 화이트, 육류에 레드라는 공식을 버리자. 한식을 예로 들면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엔 로제 와인이, 갈비찜엔 레드 와인이, 심심하게 볶은 밥에는 화이트가 어울린다. 각종 전과 튀김, 돼지갈비와 수육 등은 와인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다만 식초, 생채소, 마늘, 자몽 등은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방해한다. 타닌이 강한 레드와 생선, 갑각류도 상극이다. 가벼운 느낌의 레드 와인에는 해산물이 잘 어울린다.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과 달콤한 디저트도 상극이다. 나만의 맛으로 만들어 먹는 와인도 있다. 과일과 허브 등을 더한 샹그리아, 향신료와 과일을 끓여 따뜻하게 마시는 ‘뱅쇼’ 등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