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하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이노베이션 총괄이 LG디스플레이와의 협업을 통한 영상 콘텐츠 기술 개발 계획을 밝히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가상전시관 홈페이지 캡처
벤 하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이노베이션 총괄이 LG디스플레이와의 협업을 통한 영상 콘텐츠 기술 개발 계획을 밝히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가상전시관 홈페이지 캡처
지금까지 영상 콘텐츠는 ‘하나의 화면’을 전제로 했다. 스토리의 배경이 되는 지도나 새로운 등장인물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려면 화면을 전환해야 했다. 앞으로는 이 같은 고정관념이 깨질 전망이다. 월트디즈니는 기능이 다른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한꺼번에 활용하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메인 스크린은 아이언맨과 악당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옆에 놓인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엔 전체 전황을 보여주는 지도가 뜨는 식이다. 시청자 옆에 놓인 롤러블(돌돌 말리는) 디스플레이를 열면 스파이더맨이 튀어나와 아이언맨을 돕도록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LG OLED에 반한 디즈니

벤 하비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이노베이션 총괄은 LG디스플레이가 CES 2021을 겨냥해 만든 온라인 전시관 영상을 통해 “OLED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 체험을 통해 관객들이 디즈니의 세계에 더욱 빠져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0월 월트디즈니 산하 ‘디즈니 스튜디오 랩’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디즈니 스튜디오 랩은 디즈니 계열 영화 촬영 기법 및 편집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개발(R&D) 조직이다. 디스플레이업계의 ‘폼팩터(형태) 혁신’을 ‘콘텐츠 혁신’으로 바꾸는 것이 디즈니 스튜디오 랩의 목표다.

월트디즈니 계열사 중 ‘어벤져스’ 시리즈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가 새로운 디스플레이 기술에 관심이 많다. 이미 편집용 디스플레이를 LG전자 ‘시그니처 올레드 8K’ TV로 바꿨다. 색 표현력이 뛰어난 데다 집에서도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블 스튜디오 측 설명이다.

다음 단계는 차세대 OLED 기술과 영상 콘텐츠의 접목이다. 투명하고 구부러지고 돌돌 말리는 화면 특성에 따라 스토리 진행이나 캐릭터에 변화가 생기는 방식으로 콘텐츠에 변화를 줄 계획이다.

영상 주도권 극장에서 TV·모바일로

전문가들은 새로운 디스플레이 등장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영상을 소비하는 주된 채널이 극장에서 TV와 모바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디스플레이 업체와 영상 제작사 간 ‘합종연횡’도 한층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월트디즈니가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엘캐피탄극장 라운지에 폼팩터가 다양한 LG OLED 디스플레이를 들여놓은 것이 콘텐츠업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엘캐피탄극장은 디즈니 신작 영화의 VIP 시사회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지금은 최근 개봉한 픽사 영화 ‘소울’을 상영 중이다. 이곳엔 88인치 8K(7680×4320) OLED TV와 LG디스플레이 투명 OLED 등 총 12대의 OLED 화면이 설치돼 있다. 모양과 기능이 다른 여러 화면에 서로 다른 영상 콘텐츠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법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겠다는 의도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사업을 확장 중인 월트디즈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활용해 콘텐츠를 차별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월트디즈니 외에 다른 콘텐츠 제작사들도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