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자영업 손실보상제 도입’에 신중론을 펼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을 “개혁 저항 세력”이라고 맹비난하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김 차관을 옹호하고 나섰다. 손실보상제 법제화는 세계에 유례가 없으며 최대 100조원 예산이 들어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홍 부총리가 ‘김 차관 지키기’에 나서는 동시에 정치권에 반기를 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소신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정치권 등 요구에 맞서 자기 주장을 폈지만 대부분 홍 부총리의 뜻과 다르게 결론났기 때문이다. 작년 11월엔 사표를 냈다가 반려됐는데, 이번에도 소신이 관철되지 못하면 퇴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 거대여당 등 정치권이 ‘나라 곳간 지킴이들’을 지나치게 핍박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손실보상 짚어볼 내용 많다"…8번째 반기 든 홍남기, 이번엔 소신 지킬까

홍 부총리 “재정은 화수분 아니다”

김 차관은 지난 20일 자영업 손실보상제와 관련해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에 정 총리가 21일 “개혁 과정엔 저항 세력이 있지만 결국 사필귀정”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자영업 손실보상 법제화를 추진하라”고 기재부에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홍 부총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영업자 영업제한 손실보상 제도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정 총리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어진 글에선 손실보상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홍 부총리는 “손실보상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짚어볼 내용이 많다”고 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는 “외국의 벤치마킹할 입법 사례가 있는지,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하면 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소요 재원이 감당 가능한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재정 당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소명”이라고 했다.

특히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여당에서 제시한 방안대로면 월 24조원이 소요돼 4개월 지급 시 한국 복지 예산의 절반 수준인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며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에 재정 상황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는 소신 관철될까

홍 부총리는 원래 관가 안팎에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예스맨’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까지 지낸 그가 현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등으로 중용된 것도 이런 성향 덕이 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그는 2018년 12월 부총리에 취임한 이후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충실히 수행했다. 2019년 1월 증권거래세 인하나 그해 3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두고 여당과 이견이 표출되긴 했으나 금세 뜻을 굽혀 큰 잡음 없이 지나갔다.

홍 부총리가 본격적으로 ‘노(No)’를 외치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정국에 들어서다. 작년 4월 여당을 중심으로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그는 “50~70% 선별 지급으로 가야 한다”고 맞섰다. 기재부 직원에게 ‘결사항전’이란 표현까지 쓰며 버텼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대주주 확대가 무산되자 “책임을 지겠다”며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해 사태가 일단락되긴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제 더불어민주당이 청와대와 협의 없이 정책을 밀어붙이는 양상”이라며 “지난해 11월엔 홍 부총리의 사표를 어렵게 반려했지만 이번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재부에선 정 총리의 질타와 일방적 지시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찍어내리기’ 식으로 정책을 지시하는 일이 계속되면 홍 부총리 아닌 누가 경제 수장을 맡아도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