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이데올로기에 드라마로 대리만족…로맨스 환상은 사라져"
낭만 로코는 지고 격정 불륜만 남다
4년 전만 해도 도깨비와 인간 신부의 로맨스에 열광했지만, 요즘 안방극장에는 '불륜'이 점령했다.

로맨틱코미디(로코) 드라마가 여전히 많지만 시청률과 화제성 측면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분위기인 반면, 흔히 '막장'으로 분류되는 불륜 소재 드라마들은 한 번씩 나와도 그 파괴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JTBC '부부의 세계'가 시청률 28.4%(닐슨코리아)라는 대기록을 쓴 후 SBS TV는 김순옥 작가와 손잡고 한층 더 선정성을 강화한 '펜트하우스'를 선보였고 시청률이 28.8%를 기록하며 대히트했다.

이에 시즌2와 3도 출격 준비 중이다.

두 작품이 가장 주목받았으나 이밖에 MBN '나의 위험한 아내', TV조선 '복수해라', KBS 2TV '바람피면 죽는다' 등 불륜을 여러 갈래로 풀어낸 작품들이 꾸준히 나왔고 시청률 면에서도 참패한 사례는 없었다.

TV조선은 5년 만에 돌아온 임성한 작가와 이날 '결혼작사 이혼작곡'을 선보일 예정인데, 제목부터 내용을 유추할 수 있듯이 불륜이 주요 소재 중 하나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 선판매되며 작가 파워를 과시하기도 했다.

낭만 로코는 지고 격정 불륜만 남다
반면, 로코극은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방영 중인 작품 중에서도 JTBC '런 온'은 그나마 젊은 층으로부터 대사의 감칠맛은 인정받고 있지만 '런 온'을 포함해 큰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렵다.

광고주 주요 지표로 분류되는 20~49세 여성 시청자가 가장 사랑하던 로코 장르가 저물고 불륜 드라마가 득세하는 배경으로는 역시 사회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혼자 살기도 각박해 비혼주의가 늘어난 세상에 사랑은 더는 로맨틱하지 않은 것이 됐고, 간통죄 폐지로 이제 범죄는 아니게 된 불륜 때문에 사람들은 인지 부조화에 빠졌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23일 "여전히 '백년해로 일부일처' 이데올로기가 공고해 불륜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고들 생각하는데, 간통죄 폐지 후 그게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감정적으로 응징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부의 세계'와 '펜트하우스'도 사회의 현상을 과장되게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도덕적 자정능력을 환기해준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로코가 부진한 데 대해 김 평론가는 "적은 제작비로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방송사들이 꾸준히 내놓지만 성과는 없다"며 "여자들은 자신의 경력과 미래를 포기해가며 가정을 갖고 싶지 않아 하고, 남자들은 왜곡된 성 의식으로 연애를 아예 안 하려 한다.

그러니 로맨스극이 더는 로맨틱하지 않은 것"이라고 짚었다.

낭만 로코는 지고 격정 불륜만 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겸 드라마평론가도 "사랑이 낭만적으로 표현된 게 로코라면 격정적으로 표출된 게 불륜인데, 로코가 잘 안 되는 건 이 시대가 낭만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불륜극 트렌드와 관련,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2007) 같은 작품을 보면 불륜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돋보인다.

불륜이라는 욕망과 심리를 극적으로 성찰했던 작품"이라며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루더라도 단순히 선정적이고 파괴적이 아닌 이 같은 깊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