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상의 노동기본권 준수 여부를 놓고 2년 넘게 벌여온 분쟁이 사실상 종료됐다. 경영계가 예상했던대로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전문가 패널이 판단하면서다. 정부는 유감을 표시했다. 당초 경영계에서는 EU의 비준 요구 자체가 무리했고, 정부가 EU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부당한 요구에 정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국익과 국격을 감안해 불가피하다"며 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을 강행했던 정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조법 개정을 마무리짓고 나서야 뒤늦게 유감을 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EU, ILO핵심협약 비준 문제 제기에 뒤늦게 유감 표한 정부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EU FTA 패널 보고서'와 관련한 브리핑을 열고 "전문가 패널이 우리 정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FTA 13장(무역과 지속가능발전)을 구속력있는 의무로 판단하고 권고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패널이 국내 노조법의 노조가입범위 제한과 노조 임원 자격 요건이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개선을 권고한 데 따른 발언이다.

전문가 패널 소집은 한-EU FTA 제13장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의 마지막 단계로, 한국·EU·제3국(호주)의 전문가로 구성돼 한국의 FTA 규정 위반 여부를 심의해왔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지난해 11월 25일까지의 상황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전문가 패널이 개선을 권고한 노조 가입범위와 노조 임원자격에 관한 문제는 지난해 12월 노조법 개정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박 차관은 "패널의 세 가지 권고 중 노조법 관련 두 가지는 노조3법 개정으로 이행 완료됐다고 판단한다"며 "패널의 권고는 지난해 11월25일까지의 상황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후에 개정된 노조법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다만 노조설립신고제도와 관련해 추가 논의를 하라는 패널 권고에 따라 곧 국장급 위원회인 무역과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EU의 권고에 유감을 표한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2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해 12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은 국회를 통과시켜놓고 정작 비준동의안은 처리되지 않아 정부의 당초 계획이 노조법 개정이 아니었냐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12월9일 경영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고자와 실업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의 임원은 해당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 노조가 자체 규약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오는 7월 6일부터 시행된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