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선우 기자 naeej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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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이는 모든 건물의 기업들이 베스핀글로벌의 고객이 될 겁니다.”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가 최근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직원에게 한 말이다. 클라우드 관리 기업(MSP)인 베스핀글로벌은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디지털 전환의 물결을 타고 파죽지세로 성장하며 국내 클라우드 서비스의 ‘관문’으로 우뚝 섰다. 이 대표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각종 연단에 올라 “10년 내 기업가치 20조원의 글로벌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자신감의 원천은 경험과 비전이다. 이 대표는 베스핀글로벌을 포함해 호스트웨이 등 4개의 회사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길러낸 ‘연쇄 창업가’다. 현재 도입률 10% 수준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모든 기업, 정부, 공공기관이 쓰게 될 것이란 비전 그리고 베스핀글로벌이 그 핵심 축을 맡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호스트웨이로 수천억원 쥐었지만…

이 대표는 1983년 삼성전자 미국 주재원이던 아버지 이해민 전 삼성전자 대표를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시카고대 생물학부를 졸업한 뒤 1998년 웹 호스팅 업체 호스트웨이를 창업해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시카고대 동문들과 이 대표 아파트에서 사업을 구상한 게 출발이었다.

웹 호스팅은 ‘원조 클라우드 서비스’ 격이다. 인터넷 서버를 고객에게 할당해주고, 고객이 홈페이지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대표는 인터넷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흐름을 타 회사를 빠르게 키웠다. 그는 호스트웨이를 2014년 초 5억달러(약 5500억원)를 받고 미국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었던 이 대표는 수천억원을 손에 쥐었다.

거액의 돈을 얻었지만 이 대표는 회사 매각을 ‘가장 허망했던 순간’이라고 주변에 말하곤 한다. 웹 호스팅 사업으로 세계 클라우드 시장을 선점할 만한 토대를 마련해 놓고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클라우드 인프라 업체가 빠르게 치고나오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대표는 국내로 돌아와 2015년 베스핀글로벌 창업으로 또다시 정보기술(IT)업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세계 클라우드 시장은 수백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며 “이 중 하나의 고리만 선점해도 한국 IT업계 전체를 먹여 살릴 회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고객사 CEO가 먼저 찾아와

이 대표는 “창업 영역을 정하는 기준의 첫 번째는 빠름, 두 번째도 빠름, 세 번째도 빠름”이라고 말한다. 규모가 작더라도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를 ‘블루오션’으로 본다는 것이다.

베스핀글로벌은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과 고객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클라우드 전환이 각 기업에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진단부터 실제 이전 과정까지 지원한다. 이상 탐지 등 클라우드 운영 관리와 보안 서비스도 책임진다. 클라우드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도와주는 매니저인 셈이다.

창업 당시 국내 클라우드 시장 규모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일부 게임사와 기업이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게 전부였다. ‘목돈’을 들여 서버를 구축하는 대신 쓴 만큼 비용을 지불해 돈을 아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클라우드 전환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보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등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구동되는 다양한 솔루션이 등장하면서다. 국내 클라우드산업이 빠르게 커질 것이란 이 대표의 전망이 들어맞은 셈이다.

베스핀글로벌은 6년간 고성장을 거듭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클라우드 전환에 나선 기업은 대폭 늘어났다. 2018년 300억원대였던 베스핀글로벌의 매출은 지난해 4배 이상 증가했다. 창업 초기 3명이었던 직원 수는 850명으로 불었다. 올해는 매출 2000억원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신규 투자를 받는 순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에 오를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여러 대기업 CEO가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클라우드 전도사’인 이 대표를 찾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CEO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기아자동차, 한화테크윈, 아모레퍼시픽, 현대백화점, 네오위즈 등 굵직한 기업이 베스핀글로벌 고객사다. 베스핀글로벌은 지난해 SK텔레콤으로부터 9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SK그룹사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B2B 사스(SaaS)가 한국 SW 미래”

이 대표는 한때 지휘자를 꿈꿨을 정도로 소문난 ‘클래식광’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던 미국 유학 초기엔 음악이 친구를 사귀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는 최근 한국 뮤지컬에 푹 빠졌다. 박강현 씨가 그의 ‘최애’ 뮤지컬 배우다. 한국 문화와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가방에 들어 있는 책 두 권 중 한 권은 항상 이런 서적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대표적이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사업을 해왔지만, 베스핀글로벌이 터를 잡은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미래는 B2B(기업 간 거래) 사스(S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라고 말한다. 사스는 사내 서버에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하는 구축형(on-premise) 서비스와는 달리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설치 없이 쓸 수 있는 서비스다. 세일즈포스, 슬랙 등이 대표적인 B2B 사스 회사다.

베스핀글로벌도 사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 ‘옵스나우’를 사스로 판매하고 있다. 기업별로 도입해 상이한 클라우드 솔루션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다. 2025년까지 옵스나우를 세계 10만 개 고객사에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대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해온 모든 사업은 상상을 현실로 바꾼 결과물이었다”며 “이 방향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직함은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업)인 스파크랩 공동 대표다. 2012년 이 회사를 창업했다. 매년 2회 진행되는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스타트업에 사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170개 국내외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지난해부턴 협업 툴 ‘잔디’를 제공하는 토스랩의 자문단에 합류해 아시아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CES 등 IT 전시회가 열리면 각종 스타트업 대표와 해외 바이어 간 연결에도 발벗고 나선다.

■ 이한주 대표는

△1972년 서울 출생
△1989년 시카고대 생물학과 졸업
△1998년 호스트웨이 창업, 북미 총괄 수석 부사장
△2006년 어피니티미디어 창업
△2012년 스파크랩 공동창업, 공동 대표 파트너
△2015년 베스핀글로벌 창업, 대표이사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