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적 넛지와 디폴트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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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의 2% 부족한 성분을 채워준다는 선전으로 세상에 나온 음료가 있었다. 출시된지 꽤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음료이다. 세상에 어느 음료가 재료나 상호를 제외하고 이처럼 과학적인 숫자로 어필을 할 수가 있을까? 도대체 2%가 어떤 의미이길래 L사는 음료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 마케팅의 결과로는 대단히 성공했다고 본다.
2%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준 같은 숫자로 각인이 되었다. ‘사랑이 2% 부족하다’ ‘설명이 2% 부족하다’ ‘정성이 2% 부족하다’ 등의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외우기도 쉽고 입에도 잘 달라붙는다. 그렇다면 부족량이 2%가 넘는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그건 이 음료가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사는 부족량이 2%가 되기 전에 바로 이 음료를 마시도록 은근히 권유하고 있다.
요즘 기상청이 매우 곤혹스럽다. 그간에 예보가 잘 맞지 않는 이유를 컴퓨터 장비와 프로그램 탓으로 돌려왔는데, 수천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고도 요즘은 특별히 빗나가는 예보가 많아서 체면이 서질 않는다. 흑백TV 시절부터 기상캐스터를 독보적으로 담당해왔던 김동완 통보관은 1998년에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라는 저서로 일기 예보의 고충을 풀어 놓았다. “3월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8월 무더위 식혀줄 효자는 태풍”. 이러한 풍자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자연의 원래 그러함을 호소하여 대비를 잘 하자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일기 예보에서 강수 확률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통계적 유의도라는 어려운 용어도 나왔다. 대충 5%정도는 통계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고 해석이 될 수 있겠다. 일기 예보가 틀리면 예보가 틀린 것인지, 통계가 틀린 것인지 애매하다. 우산을 가지고 가야하는 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몫이 되어 버렸다. 통계적으로 허용하는 오차범위를 5%라고 광범위하게 이용을 하고 있어서, 일상적으로 인정해주는 잘못의 허용 범위로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 통계의 생활화를 주장하는 통계인들의 성공적인 단면일까?
L사의 2%와 통계인들의 5%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통용되므로 사회적 넛지로 작용한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기준을 제시해서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 멋진 심리적 기술이다. 일단 이러한 숫자가 자리 잡으면 실질적 표준인 디팩토 스탠더드가 되어 버린다. 새로운 기준이 대두될 때 비교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초기치 또는 기준값이라 불리는 디폴트 값이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태만이라는 뜻이고 경제학에서는 채무 불이행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디폴트 값은 큰 영향력을 갖는다. 자동차의 연비 등급과 가전제품의 절전 등급은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살피는 정보인데, 정부가 어떤 값을 디폴트로 사용하여 등급을 나누냐 하는 것은 제조사와 구매자 모두에게 넛지가 될 수 있다. 제조사는 최고 등급이 될 수 있도록 기술 수준과 제품의 품질을 높이게 될 것이다. 구매자는 최고의 품질을 비싸게 살 것인지 아니면 기준만 넘는다면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살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2009)’를 통해 조금 더 어려운 문제인 장기기증자를 확대하기위한 방법을 고려해보자. 한사람이 죽으면서 장기를 기증한다면 최소한 3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적 사회적 인식으로 장기기증이 보편화되고 있지 않다. 장기기증은 사망자 본인의 의지보다는 유가족의 동의가 큰 관건이다. 장기기증이 디폴트인 미래가 올 수도 있다. 아마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적어도 개인이 싫다면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므로 옵트아웃의 선택권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디폴트가 국민적 합의로 작용하려면 장기기증을 실천한 유가족에겐 장기기증을 받을 우선권을 주는 인센티브도 필요할 것이다. 주민증에 장기기증자 가족임을 증명하는 금박 별표 하나만 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넛지가 될 수도 있다.
선택권이 다양할 때 디폴트는 힘을 발휘한다. 의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디폴트의 세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 값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1개월 무상제공이라는 마케팅에 동의하고 몇 개월동안 무심코 비용을 내고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기업은 개인들의 이런 무심함을 파고든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용한고자 한다. 국민연금을 수급하는 방법에는 상당히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금의 고갈로 재정적인 걱정이 문제라면 연금지급 시기를 늦추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방향으로 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일하는 기간을 늘려주고 그 기간에 연금 수급이 줄어드는 제도도 시행 중이긴 하다.
사회적 디폴트 값은 거시적으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으므로 기존의 가치들은 영구적이지 않다. 통계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와 정치인들은 살기편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위해 변화하는 디폴트 값을 찾아내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1%의 오류도 허용하면 안되지만 사회적으로는 좀 더 큰 숫자도 통용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무의식 중에 리스크를 피하고 환경오염도 줄이며 현명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각종 지표들이 넘쳐날 것이다. 사실 그것도 너무 많아서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김동철 < 유비케어 사외이사 >
2%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준 같은 숫자로 각인이 되었다. ‘사랑이 2% 부족하다’ ‘설명이 2% 부족하다’ ‘정성이 2% 부족하다’ 등의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외우기도 쉽고 입에도 잘 달라붙는다. 그렇다면 부족량이 2%가 넘는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그건 이 음료가 진입하고자 하는 시장이 아니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사는 부족량이 2%가 되기 전에 바로 이 음료를 마시도록 은근히 권유하고 있다.
요즘 기상청이 매우 곤혹스럽다. 그간에 예보가 잘 맞지 않는 이유를 컴퓨터 장비와 프로그램 탓으로 돌려왔는데, 수천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고도 요즘은 특별히 빗나가는 예보가 많아서 체면이 서질 않는다. 흑백TV 시절부터 기상캐스터를 독보적으로 담당해왔던 김동완 통보관은 1998년에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라는 저서로 일기 예보의 고충을 풀어 놓았다. “3월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8월 무더위 식혀줄 효자는 태풍”. 이러한 풍자는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자연의 원래 그러함을 호소하여 대비를 잘 하자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일기 예보에서 강수 확률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통계적 유의도라는 어려운 용어도 나왔다. 대충 5%정도는 통계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고 해석이 될 수 있겠다. 일기 예보가 틀리면 예보가 틀린 것인지, 통계가 틀린 것인지 애매하다. 우산을 가지고 가야하는 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몫이 되어 버렸다. 통계적으로 허용하는 오차범위를 5%라고 광범위하게 이용을 하고 있어서, 일상적으로 인정해주는 잘못의 허용 범위로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 통계의 생활화를 주장하는 통계인들의 성공적인 단면일까?
L사의 2%와 통계인들의 5%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통용되므로 사회적 넛지로 작용한다. 강요하지 않으면서 기준을 제시해서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는 멋진 심리적 기술이다. 일단 이러한 숫자가 자리 잡으면 실질적 표준인 디팩토 스탠더드가 되어 버린다. 새로운 기준이 대두될 때 비교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별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초기치 또는 기준값이라 불리는 디폴트 값이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영어로는 태만이라는 뜻이고 경제학에서는 채무 불이행을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디폴트 값은 큰 영향력을 갖는다. 자동차의 연비 등급과 가전제품의 절전 등급은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살피는 정보인데, 정부가 어떤 값을 디폴트로 사용하여 등급을 나누냐 하는 것은 제조사와 구매자 모두에게 넛지가 될 수 있다. 제조사는 최고 등급이 될 수 있도록 기술 수준과 제품의 품질을 높이게 될 것이다. 구매자는 최고의 품질을 비싸게 살 것인지 아니면 기준만 넘는다면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살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2009)’를 통해 조금 더 어려운 문제인 장기기증자를 확대하기위한 방법을 고려해보자. 한사람이 죽으면서 장기를 기증한다면 최소한 3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적 사회적 인식으로 장기기증이 보편화되고 있지 않다. 장기기증은 사망자 본인의 의지보다는 유가족의 동의가 큰 관건이다. 장기기증이 디폴트인 미래가 올 수도 있다. 아마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적어도 개인이 싫다면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므로 옵트아웃의 선택권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디폴트가 국민적 합의로 작용하려면 장기기증을 실천한 유가족에겐 장기기증을 받을 우선권을 주는 인센티브도 필요할 것이다. 주민증에 장기기증자 가족임을 증명하는 금박 별표 하나만 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넛지가 될 수도 있다.
선택권이 다양할 때 디폴트는 힘을 발휘한다. 의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디폴트의 세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 값을 바꾸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1개월 무상제공이라는 마케팅에 동의하고 몇 개월동안 무심코 비용을 내고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기업은 개인들의 이런 무심함을 파고든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용한고자 한다. 국민연금을 수급하는 방법에는 상당히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금의 고갈로 재정적인 걱정이 문제라면 연금지급 시기를 늦추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방향으로 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일하는 기간을 늘려주고 그 기간에 연금 수급이 줄어드는 제도도 시행 중이긴 하다.
사회적 디폴트 값은 거시적으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으므로 기존의 가치들은 영구적이지 않다. 통계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와 정치인들은 살기편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위해 변화하는 디폴트 값을 찾아내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1%의 오류도 허용하면 안되지만 사회적으로는 좀 더 큰 숫자도 통용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무의식 중에 리스크를 피하고 환경오염도 줄이며 현명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각종 지표들이 넘쳐날 것이다. 사실 그것도 너무 많아서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김동철 < 유비케어 사외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