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LCD·OLED 패널, MLCC 등 주요 전자부품 생산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공급 부족’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선전에 있는 한 디스플레이업체 직원이 LED 패널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반도체, LCD·OLED 패널, MLCC 등 주요 전자부품 생산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공급 부족’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 선전에 있는 한 디스플레이업체 직원이 LED 패널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굴지의 전자기업 A사는 ‘2위권(2nd tier)’으로 평가받는 중국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업체 C사를 공급사로 추가할 계획이다. 기존 거래처가 납품하는 부품만으론 제품을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A사는 신속한 공급처 지정을 위해 평상 시 ‘1년 이상’ 걸리는 품질 검증 기간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반도체에서 시작된 ‘공급 부족’ 기류가 전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LCD·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LED칩, 2차전지, ABS(고부가합성수지) 등 정보기술(IT)·가전 핵심 부품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생산 차질’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반발 소비’ 확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인한 경기 회복 기대로 부품 수요가 커졌는데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한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中 스마트폰, MLCC 부족으로 생산 차질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가동률을 10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재택근무 영향으로 노트북, 모니터용 LCD 패널 주문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 LCD 패널 업체들이 ‘완전 가동’ 상태”라고 말했다.

삼성SDI도 비슷하다. 이 회사의 원통형 전지는 미국 밀워키, 독일 보쉬 등의 전동공구와 테슬라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간다. 최근 경기 회복으로 전동공구 등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업계에선 “턱밑까지 주문이 찬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전기차, 스마트폰 등에 많게는 1만 개까지 들어가 ‘산업의 쌀’로 불리는 MLCC도 ‘공급 부족’ 상태다.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주문을 급격하게 늘린 영향이 크다. 세계 1위 업체 무라타의 노리오 나카지마 사장은 지난달 블룸버그에서 “휴일도 쉬지 않고 생산 중”이라고 밝혔다. 구매력이 떨어지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이미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노트북 ‘일시 품절’ 속출

부품 주문이 급증한 탓에 스마트폰, TV 업체들도 부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업체는 ‘감산’이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대체 거래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 통신칩 대신 대만 미디어텍 칩을 중저가 스마트폰에 활용하고 있다. 작년 출시한 갤럭시A32에 대만 미디어텍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넣은 데 이어 최근 영국에 출시한 저가폰 갤럭시A12도 미디어텍 칩셋을 채택했다. 반도체 품귀 때문에 자사 칩의 공급이 부족해진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가전업체들은 최근 제품 용기로 사용하는 ABS 수급 문제로 긴장 상태다. 가전업체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충분한 ABS를 공급받지 못했는데 상반기 내내 부족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재택근무 영향으로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 노트북 업체들은 “도대체 언제 도착하냐”는 고객들의 원성을 달래는 데 급급하다. 대만 에이서, 에이수스 등의 노트북은 주문 후 최장 2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AMD의 노트북용 중앙처리장치(CPU) 품귀와 LCD 패널 부족 영향이 크다.

제품이 부족해 경쟁사에 ‘외주 생산’을 맡기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일부 물량 생산을 자사 공장이 아니라 대만 UMC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사업부 공장이 완전 가동 중이지만 다른 외부 업체의 주문이 밀려 추가 공급 여력이 없는 상황이어서다.

수급 정상화에 6개월 이상 걸릴 듯

공급 부족 사태의 원인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부품사들이 ‘보수적인’ 설비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계 1~3위권 반도체업체도 지난해 설비투자액을 전년 대비 10~30% 정도 줄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부품 수요가 폭발하자 ‘품귀’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TSMC 등 부품 생산 업체들은 올해 증설에 나설 계획이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 생산시설에 투자해도 양산까지는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공급 부족은 이제 시작됐고 3년 이상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다른 부품업체들로 ‘쇼티지’가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