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은행 등 금융회사에 “위기에 대비해 주주배당을 줄이라”고 권고하면서도 정치권의 금융권 이익공유 압박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금융위는 그제 정례회의에서 은행권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을 20% 이내로 하라는 권고안을 의결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은행이 예년보다 배당을 줄여 대출 부실화에 대비한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지난해 25~27%였던 주요 금융지주회사의 배당성향은 5∼7%포인트 이상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가 은행에 배당을 줄여 ‘위기 방파제’를 더 높이라고 요구하는 와중에 여당에선 이익금의 일부를 코로나 피해 업종 지원에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익을 보는 대표적인 업종이 금융업”이라며 이익공유제 동참을 촉구했다. 충당금을 더 쌓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금융위 방침과 배치되는 주장이다. 금융위는 은행을 둘러싼 이 같은 모순적 요구 사항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사회공헌을 명분으로 금융회사에 기금 출연을 요구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은행권의 청년창업재단 출연, 지역신용보증기금 출연, 새희망홀씨 대출 등이 모두 그런 경우다.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등 22개 금융회사가 사회공헌 사업에 쓴 돈만 2019년 1조1359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오너 없는 은행의 돈을 마치 주인 없는 돈처럼 생각해 툭하면 공공기금 출연을 요구하고, 은행들은 내키지 않아도 정부 요구에 순응해온 게 현실이다. 여전히 관치금융이 횡행하는 한국 금융산업의 부끄러운 현주소이기도 하다.

국내 금융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진 분야다. 제조업에선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왔지만 금융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권이 금융을 성장 산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시콜콜 통제하거나 손 벌릴 대상으로 여겨온 탓이 크다. 금융규제와 관치 관행이 타파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이 은행에 대해 뉴딜 투자, 이익공유, 배당 억제 등 압박 수위를 높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코스피지수가 연초 대비 10% 이상 올랐지만 은행 주가는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 다. 정치권과 정부가 지금처럼 은행 돈을 ‘쌈짓돈’처럼 생각하는 한 금융 경쟁력 제고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