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즈 소집한 최장물, 사이다 대사까지
"그런데 왜 나한테는 빨간옷 안 줘?"
OCN 주말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원작 웹툰의 매력을 살린 시원한 쾌감을 안긴 악귀 타파 액션으로 사랑을 받았던 작품. 청춘 스타 조병규와 김세정, 나이를 잊은 액션을 보여준 유준상, 염혜란의 활약도 매 회 화제가 됐지만, 명품 수트에 스포츠카를 타는 장물유통 회장님 최장물 역을 맡은 안석환의 활약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경이로운 소문'은 OCN 창사 이래 최초로 10% 시청률을 돌파하며 일찌감치 시즌2 제작을 결정지은 작품.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지상의 악귀를 물리치는 카운터즈들을 성장과 악귀 타파 스토리로 사랑받았다.
안석환이 연기한 최장물은 '부캐'는 대한민국 50대 갑부이지만, 실상은 카운터즈의 최 연장자이자 '물주'이며 카운터즈 사고처리 전담자이다. 등장할 때마다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내놓으며 양파같은 매력을 뽐냈다. 추매옥(염혜란)에게 던지는 느끼한 추파가 밉지않을 정도.
안석환은 "솔직히 이렇게 잘 될지 몰랐다"면서 "나이 60 넘어서 대박 친 드라마가 없었는데, 감독님의 연출력이 좋았고, 좋은 후배들이 열심히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더 연기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다행이다"며 유쾌한 종영 소감을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안석환은 1959년 생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그 시기가 1987년이었다. 안석환에게 "'경이로운 소문' 웹툰 원작을 본 적 있냐?"고 묻자, 안석환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보고 큰 세대는 아니다"면서도 "원래 원작을 잘 안보는 편이기도 하다. 시즌 2가 만들어지지만 안 볼 계획"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원작에서는 최장물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른 카운터즈들과 마찬가지로 과거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 시즌2에서는 최장물 캐릭터의 확대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안석환은 "최장물에게 하나(김세정)처럼 기억을 읽는 능력이나, 30분 후의 미래를 보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최장물의 과거 보다는 미래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가 액션을 참 잘합니다.(웃음) 50대까진 액션을 했어요. (유)준상이도 저한테는 안되요. 아, 준상이와 저는 친합니다. 제가 (유준상과 홍은희가) 결혼하기 전, 연애하는 것도 다 봤어요."
카운터즈가 본격적인 액션을 펼치기 전 '작업복'인 빨간 운동복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저만 안줘서 참 서운하다"면서 "제 옷은 왜 없냐고 컴플레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 마지막 엔딩에 최장물이 똑같이 정장을 맞춰준 거 아니겠냐"며 액션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았다.
"'경이로운 소문' 성공, 현장이 좋았다"
안석환은 '경이로운 소문' 현장에서 카운터즈 막내 조병규에게도 "형"으로 불렸다. 35년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만큼 "선생님"이라는 칭호도 어색하지 않지만, 후배들에게 먼저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아 달라"고 다가갔기 때문.'경이로운 소문' 출연진 모두 "너무너무 좋았던 현장"이라고 말했다. 후배들 모두 입을 모아 "그 중심에 안석환 선배님이 계셨다"고 했지만, 그는 "유준상이 잘했고, 다들 연기도 잘했고, 감독님도 배우들이 편안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그 모든 걸 흡수했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작가 교체'라는 내홍을 겪었지만, '경이로운 소문'이 마지막까지 경이로운 종영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끈끈한 현장 덕분이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경이로운 소문'은 작년 8월에 촬영을 시작해 5개월 동안 찍었어요. 16개 드라마 치곤 오래 찍었지만, CG 작업도 해야 하고, 저희끼리는 치열했어요. 나중에 기사가 나고서야 작가님이 그렇게 됐다는 걸 알게 됐죠. 모두들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하기에 바빴죠."
35년 동안 출연작 220개
안석환은 '경이로운 소문'이 방영됐던 시기에 MBC 일일드라마 '찬란한 내 인생'에서 능력도 없고, 허세만 가득 찬 '밉상' 시아버지 기신 역을 연기했다. MBC '검법남녀', tvN '나인룸', '백일의 낭군님' 등에서 탐욕에 가득한 인간상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경이로운 소문'에서는 이전까지 악독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안석환은 "연기도 유행이 있다"며 "후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노력한다"고 자신을 낮추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또 "편하고 익숙한 것만 연기만 하려고 하면 보수적이 된다"며 "연기도 예술 활동인데, 남들과 똑같은 걸 누가 돈 주고 사겠냐"고 냉정한 판단력을 내비쳤다.
쉼 없는 활동을 한 덕분에 안석환은 지난 35년 동안 22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수년간 무대에 오르며 700회 공연을 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작품도 하나로 셌지만 엄청난 숫자다.
단순히 출연 제안이 오면 닥치는대로 출연해서가 아니다. 안석환의 필모그라피 중엔 영화 'MB의 추억', '26년' 등의 작품도 있다. 안석환은 "시사적이고 역사적인 내용을 담는 작품이라면 참여하려 한다"며 "영화는 주관적이라, 주관적으로 담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기록하는게 예술 행위자로서의 양심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지"라며 웃었다.
"오래 연기하고 싶어 연기하죠."
안석환은 "운동은 연기자의 기본"이라고 했다. 매일 하루 평균 10km 정도를 뛰고, 항상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건강한 몸을 유지해 오래 연기하기 위해서라고.애정을 갖고 연기했던 캐릭터와 이별하는 방법도 운동이었다. 숨이 막힐 때까지 운동을 하고 난 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질 때, 그동안 가득 채웠던 생각을 버릴 수 있다는 것. 안석환은 "불교에선 '아는 만큼 모른다'고 한다"며 "비우는 만큼 다시 채울 수 있어서 최대한 비우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연극을 할 땐 마포에 있는 집에서 서울역을 지나 대학로나 명동까지 걸어다닌다"는 안석환은 "내 인생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배우를 택한 것"이라고 꼽을 만큼 일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표했다. "좋아서 하는 건데, 그걸로 돈까지 버니 금상첨화"라는 것.
그런 안석환의 2021년 목표는 '경이로운 소문' 시즌2와 함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한 번 더 하는 것"이라고. 큰 워커를 신고 탭댄스를 춰야하는 만큼 체력 소모가 큰 작품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서 계속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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