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주택 총량 증대만으론
주거불안 해소하지 못해
시장원칙에 맞게
민간 주택시장을 활성화해
원하는 지역에 양질의 집 지어야
성태윤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러시아혁명 이전에도 저소득 계층이 함께 어렵게 사는 형태가 존재했기 때문에 코뮤날카 자체를 혁명의 유산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혁명 이후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거 소비에트연방의 중요한 주거 방식 가운데 하나로 활용된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같은 공간에 다양한 사회집단을 혼재시키는 것이 혁명 이념에 부합한다고 봤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생활 보장이 어렵고 질이 떨어지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당장 거주할 곳이 없는 상황이라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주택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1950년대 후반~1960년대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은 집권 이후 최소한의 사생활이 보장되며 가족 단위의 별도 생활이 가능한 공동주택 물량을 늘려 코뮤날카 또는 스탈린 시대의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공동거주 개념에서 벗어났을진 몰라도 주택을 상품으로 인식하지 않고 공적 자원을 동원해 주택 수량을 늘린다는 접근은 코뮤날카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어서 주택 수요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소비에트연방이 주거 불안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놀랍지 않다. 흔히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하면 개별 주거공간의 총량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고, 따라서 개별 주거공간의 수를 늘리면 주거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서울 강남 지역의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 이 지역과 떨어진 곳에 주택을 공급하면 전체 수량은 증가하겠지만 선호 지역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시장이 안정되기 어렵다.
물론 과거처럼 전체 주택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주거공간의 수를 늘리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 경제 개발 초기에 도시화로 발생하는 주택 문제는 그런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러시아혁명 이후에 귀족의 저택을 여러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개별 공간으로 쪼개 공급한 코뮤날카도 이런 관점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현재 주거 안정의 핵심은 수요가 있는 지역에 선호할 만한, 양질의 주거공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예를 들어 최근의 주택 가격 폭등과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을 보면 흔히 전체 주택 수가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국적으로 빈집은 150만 가구에 달하며 이 중 83만 가구 정도는 아파트다.
빈집을 전체 주택 수로 나눈 빈집 비율은 전국적으로 2019년 8.4%에 달한다.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3.2%, 6.4%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이지만 여전히 상당량 존재하고 강원이 13.4%, 충북 12.4%, 충남 12.7%, 전북 12.6%, 전남 15.5%, 경북 13.3%, 경남 11.6%, 제주는 15.1%에 이른다. 심지어는 주요 광역시에도 상당수 빈집이 있는데 부산 8.8%, 대구 5.1%, 인천 6.5%, 광주 7.5%, 대전 6.0%, 울산 8.5%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공공임대 중심의 공급이 부동산 시장과 주거를 안정시킨다고 보기 어렵다. 저소득층에 공공임대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다양한 계층의 주거를 안정시킬 수 없다. 특히 최근처럼 시장과 괴리된 정책을 시행해 자율적인 시장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발생하는 주거 불안을 극복하려면 실제로 시장원칙에 맞게 민간주택 시장을 원활히 작동시켜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 양질의 주택이 공급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주택도 위치, 형태, 구조, 면적 등에 따라 다양한 선호가 존재하는 상품이라는 것,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양질의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국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직시하는 데서 정책이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