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수지 누구인가…미얀마 독립영웅의 딸, 민주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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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수난…
로힝야족 탄압때 군부 옹호
'두 얼굴의 지도자' 오명도
로힝야족 탄압때 군부 옹호
'두 얼굴의 지도자' 오명도
아웅산수지 미얀마 국가고문(76)은 미얀마에서 ‘이름 자체가 힘’인 인물이다. 수십여 년간 미얀마 군부에 수차례 구금을 당하면서도 민주화 운동에 힘써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자국에서의 정치적 입지는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다. 총선에서 군부를 제친 2016년부터는 미얀마 헌법에도 없는 국가고문 지위를 신설해 맡고 있다. 대통령보다 높은 자리다. 그런 그가 또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
수지 고문은 1945년 미얀마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암살된 뒤 인도와 영국에서 자랐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2년에는 영국인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의 삶은 198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미얀마를 방문했다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수차례 연설로 유명해졌다.
그는 1989년 야당 세력을 망라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결성하고 이끌었다. 이후 15년간 가택연금과 구금, 석방을 반복해 겪으면서도 미얀마를 떠나지 않은 채 군사정권에 저항했다. ‘민주화의 꽃’ ‘강철나비’라는 수식어를 얻은 게 이때다. 1991년엔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지 고문은 2010년 말 미얀마에서 20년 만에 총선이 치러지면서 석방된 이후 정계활동에 적극 나섰다. 2015년 말 자신이 이끄는 NLD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자 국가고문직에 올랐다. 군부가 제정한 헌법상 외국 국적 배우자나 자녀를 둔 이는 대통령에 오를 수 없어서다. 수지 고문의 아들은 모두 영국 국적이다.
이후 그는 국제사회에서 ‘두 얼굴의 지도자’란 오명을 얻었다. 자신을 수십 년간 견제해온 군부와 두드러진 대립각을 세우지 않은 채 당분간 공존을 택했기 때문이다. 2017년엔 미얀마 군부가 방글라데시 계열의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집단학살해 비판이 쏟아진 때에도 군부를 옹호했다. 이후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었고, 2004년 5·18 기념재단이 수여한 광주인권상이 2018년 철회되기도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수지 고문은 1945년 미얀마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암살된 뒤 인도와 영국에서 자랐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2년에는 영국인 마이클 에어리스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의 삶은 198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미얀마를 방문했다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수차례 연설로 유명해졌다.
그는 1989년 야당 세력을 망라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결성하고 이끌었다. 이후 15년간 가택연금과 구금, 석방을 반복해 겪으면서도 미얀마를 떠나지 않은 채 군사정권에 저항했다. ‘민주화의 꽃’ ‘강철나비’라는 수식어를 얻은 게 이때다. 1991년엔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지 고문은 2010년 말 미얀마에서 20년 만에 총선이 치러지면서 석방된 이후 정계활동에 적극 나섰다. 2015년 말 자신이 이끄는 NLD당이 총선에서 압승하자 국가고문직에 올랐다. 군부가 제정한 헌법상 외국 국적 배우자나 자녀를 둔 이는 대통령에 오를 수 없어서다. 수지 고문의 아들은 모두 영국 국적이다.
이후 그는 국제사회에서 ‘두 얼굴의 지도자’란 오명을 얻었다. 자신을 수십 년간 견제해온 군부와 두드러진 대립각을 세우지 않은 채 당분간 공존을 택했기 때문이다. 2017년엔 미얀마 군부가 방글라데시 계열의 이슬람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집단학살해 비판이 쏟아진 때에도 군부를 옹호했다. 이후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일었고, 2004년 5·18 기념재단이 수여한 광주인권상이 2018년 철회되기도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