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재 꿈꾸는 2030…"일찌감치 임원승진 포기했어요"
2030세대들 사이에 '임포자(임원 승진 포기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들은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선배 세대와는 달리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재테크에 더 관심이 많다. 임원에 오르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데 올라도 매년 인사철만 되면 좌불안석인 선배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 뿐아니라 젊은 기업을 표방하는 테크기업들이 늘면서 선택지가 넓어진 것도 임포자가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대기업을 가지 않더라도 성장하는 기업에서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임원은 단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도전해야 한다고 한다. 홍석환 HR전략 컨설팅 대표는 "임원이 되면 폭넓은 조직관리력과 경험을 통해 종합적 의사결정 역량이 높아진다"며 "이러한 자부심과 성취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수 없기에 젊은이들은 여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절반 "길고 가늘게…임원보다 정년원해"

최근 취업사이트 인크루트가 20~50대 직장인 739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52.0%)은 "정년까지 직장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응답자 네명중 한명(25.0%)은 직장을 다니면서 쌓은 인맥,노하우를 기반으로 창업을 원했다. 승진을 택한 비율은 19.4%에 불과했다.

2017년 한 조사업체에 따르면 임기만료 대기업 임원의 연령은 55~59세가 39.8%로 가장 많았다. 60~64세는 36.9%, 50~54세 11.7%, 65~69세 8.7%, 70세 이상 2.9% 등이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매년 연말 언론에서는 승진 임원을 발표하지만 옷 벗는 임원들이 훨씬 많다"며 "40대 50대 임원이 잇따라 나오는 상황에서 50대 중반 임원은 '파리목숨'일뿐"이라고 허탈해 했다.
워라재 꿈꾸는 2030…"일찌감치 임원승진 포기했어요"

워라재·파이어족 꿈꾸는 젊은세대

이런 이유로 임포자들의 관심은 '직장'보다 '재테크'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의 취미는 주말마다 서울시내 동네 부동산 투어와 주식투자 앱에서의 '룰렛게임'이다. 저평가된 똘똘한 집 한채를 장만하고, 9만전자(삼성전자의 주가가 9만원으로 상승하는 것)에 합류해 40대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되고 싶어서다. 30대 직작인 김 모씨는 "동기들 단톡방에는 회사이야기 보다는 주식,부동산 등 재테크 이야기 뿐"이라며 "회사에서 인정받아 빠르게 임원 승진한 후 조기퇴사하는 것보다, 승진은 안되더라도 정년까지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굵고 짧게'보다는 '가늘고 길게'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2030 젊은층 사이에선 '워라재(워라밸+재테크)'란 유행어까지 나오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와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로 회사도 직원들에게 일을 강요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 기업은 최근 추진중인 프로젝트를 고민끝에 포기해야만 했다. "프로젝트 수행이 과중했다"는 내용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 떴기 때문이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블라인드 앱에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면 채용과정에서도 좋은 인재들이 입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주52시간제 도입으로 프로젝트가 눈앞에 있어도 야근을 요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워라재 꿈꾸는 2030…"일찌감치 임원승진 포기했어요"

존경받는 임원 많이 배출하는 문화 만들어야

사정이 이러하니 승진을 앞둔 차·부장들은 코로나19로 재택근무령이 떨어졌지만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낀 세대'가 되고 있다. 아들·딸같은 신입사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하고, 임원이 언제 호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입사원들이 도맡아 하던 복사일이며 보고서 정리도 부장의 몫이 됐다.

임포자가 늘면서 기업 인사팀도 고민중이다. 어떻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인사에서는 경영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이들이 임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전문가는 "일과 사람관계에서 젊은 세대들이 존경할 만한 임원을 많이 배출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임포자'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실제 해외에서도 '성장에 대한 열망(aspiration for growth)'을 핵심인재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