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간신', '사라진 밤' 등 굵직한 작품을 통해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온 데뷔 17년 차 배우 김강우가 이번엔 헐렁한 이혼남으로 분했다. 영화 '새해전야'(감독 홍지영)에서 그는 사람 냄새 나는 이혼 4년차 형사 지호를 연기했다.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외적 변신을 꾀하며 힘을 뺀 연기를 선보였다.

데뷔 17년차이지만 김강우는 작품에 대한 '설렘'은 여전하다고 했다. 지난 2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연기를 하며 30대 가 되고 40대가 됐다. 연기하는 입장에선 똑같다. 그저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그저 덜 긴장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강우는 2001년 단막극으로 데뷔한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선 굵은 연기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선택에 대해 김강우는 "누구와 상의하는 게 힘들어졌다. 배우들은 제안이 오는 범위 안에서 골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꼭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를 정하는 게 숙명"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가족들과 작품에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까지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저를 잘 아는 매니저 정도다. 그래서 외롭다. 하지만 그걸 즐겨야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성수기 혹은 비성수기가 있다. 하지만 김강우는 배우의 커리어와 관련해선 긴 안목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강우는 "성수기, 비성수기로 나누면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마라톤을 뛰면서 지금 몇 킬로까지 왔을까란 생각을 한다. 긴 시간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뛰다 보면 언덕도 나오고 해도 나온다. 내 마음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냥 달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강우는 4년 전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해 "꼴보기 싫게 밉다가도 소중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언급하자 껄껄 웃었다.

그는 "꼴보기 싫은 건 없어진 상태"라며 "예전엔 내 팔자가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한데 이 일을 계속 해야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소중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어떤 직업이든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듯, 처음 10년은 미웠다 좋아다의 반복인데 '얘 아니면 못 살겠다' 하는 순간이 오더라. 지금 그런 단계"라고 귀띔했다.

배우란 직업에 대해 "개런티를 위해 일하진 않지만, 당연히 그 부분도 있다. 그래서 숭고한 직업이다. 배우는 육체,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촬영을 안 할 때는 무조건 몸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해전야' 김강우  /사진=에이스메이커
'새해전야' 김강우 /사진=에이스메이커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들은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에 김강우는 "맞다. 보편적인 사람이 쓰는, 평생의 감정 만큼 한 작품에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돌리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꼭 가진다고. 그는 "운동 선수들이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엄청 뜨거워 잠을 못자는 지경까지 오기도 한단다. 감정을 그렇게 쓰면 몸은 피곤한데 잠을 못자기도 한다. 정신적인 쿨타임이 필요할 때 조용히 있는다. 음악도 안 듣고, 대화도 안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직업인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은 이해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유지하기 힘들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가족에게 더 할애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배우들도 생업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김강우는 "저도 촬영 했는데 개봉 못 한 영화가 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들이 그렇다. '새해전야'가 이렇게 개봉을 한다는게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강우는 "'새해전야'라 전전긍긍했지만 2월 구정 전에 개봉을 하면 이 영화의 소임을 다 한거 아닌가 싶다. 얼마나 관객이 들고, 사랑을 받는지는 저의 영역을 벗어난 것 같다. 이 시기에 개봉을 한 것 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또 "극장에 영화들이 확연히 줄었다. 이런 힘든 시기에 살면서 영화나 배우가 없어도 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배우란 뭘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해짐을 느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이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힘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거다. 신념을 가지고 연기해야 겠구나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타인과의 만남과 소통이 적어지다보니 이해심이 적어진다. 굉장히 위험하다. 제일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들이다. 저는 어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소통하고 사는게 맞는건데 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좀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새해전야'는 인생 비수기를 끝내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네 커플의 두려움과 설렘 가득한 일주일을 그린 영화다. 취업, 연애, 결혼 등 가장 보편적인 우리의 고민이 네 커플의 얼굴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오는 2월 10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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