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개입이 쌓는 미묘한 진입장벽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는 특별한 허락을 받아야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18세기 초까지는 그 허락을 왕실헌장이나 의회법에 의해 받을 수 있었다. 나라에서 받는 특별한 허락이기에 태생부터 독점이었고, 주로 특정 지역과의 거래를 독점한 수입으로 영국 왕실에 기여하는 것이 전제됐다. 17세기에 영국이 해양제국으로서 팽창하면서 이 독점회사들도 승승장구하고 주가 역시 지속적으로 올랐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에 합류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주가가 너무 올랐다는 우려가 정치화된 것이다. 결국 1720년 ‘버블법’이 제정돼 왕실헌장에 의해서만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다. 투기의 근원인 회사 자체를 의회가 쉽게 설립 허가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이 법으로 기존 회사들의 독점력이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주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뛰었고, 결국 그해 말 당시 가장 잘나가던 ‘남해(South Sea)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며 영국 경제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버블법이 사실은 투자자들의 관심이 남해회사로 몰리길 바란 왕실과 귀족 주주들이 로비한 결과라고 한다.

300년 전 영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2021년 한국판 뉴딜 추진 계획’에 포함된 ‘가사근로자법’ 때문이다. 흔히 가사도우미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법이다. 이 법은 더불어민주당 규제혁신 추진단의 입법에도 포함됐다. 국회에 발의된 가사근로자법 제정안은 세 가지인데, 그중 작년 7월 정부가 제출한 안을 보자. 가사서비스를 중개하는 회사가 가사근로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손해배상 수단도 마련하면 정부 인증을 받는 대신 유급주휴 및 연차휴가, 퇴직급여를 보장하는 한편 가사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주당 15시간 이상 일을 배정하는 등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 법안에서 영국을 떠올리게 한 건 가사서비스 중개회사에 정부 인증을 받도록 한 대목이다. 정부 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법이 실행됐을 때의 결과는 두 방향으로 예측된다. 첫 번째 방향은 법 제정 이후 바뀌는 게 별로 없는 것이다. 인증 조건을 맞추고 규정을 이행하려면 가사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가사서비스를 원하는 가구가 더 높은 가격을 지급할 의사가 없다면 인증 업체는 비인증 업체에 밀려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고 법은 구색으로만 남을 것이다.

두 번째 방향은 이미 존재하는 큰 업체, 특히 다수의 이용자를 보유한 앱을 운영하는 플랫폼 업체들이 정부 인증을 받고 독과점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인증은 회사 설립이 특권이었던 옛날 영국처럼 가사서비스 중개 시장의 경쟁을 크게 억제하는 진입장벽 역할을 할 것이다. 중개의 효율성을 높이는 아이디어가 있는 잠재적 기업가들은 정부 인증 때문에 창업을 주저하게 되고, 신규 진입은 이미 다른 영역에서 성공한 대형 플랫폼 업체들에만 가능할 수도 있다.

가사근로자는 그들을 보호하려는 법의 취지와 달리 독과점화한 업체들에 의존하게 되고 유급주휴, 연차휴가 등을 다 고려해도 더 낮은 수입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정부의 대응 방향은 뻔하다. 인증 요건 및 근로자 보호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서비스 이용료에 대한 하한이 설정되거나 아예 반쯤은 공공기관인 업체가 설립될 수도 있다.

두 번째 방향이 필자의 거친 상상력 속 허구로 남길 바란다. 하지만 사적인 비즈니스 영역에 정부가 야금야금 발을 담그고 만든 미묘한 진입장벽은 누군가에겐 특권이 될 수 있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영국의 회사법은 산업혁명이 가시화된 19세기 중반 근대화된 형태로 재탄생하면서 누구나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고, 이 제도가 다시 산업혁명에 윤활유가 됐다. 이로부터의 교훈은 간단하다. 비즈니스의 성장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