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36) 원조선의 산업
현생 인류는 초기부터 상업을 했고, 곧 원거리 무역을 했다. 3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 유적지(유럽의 중심부)에서 지중해나 대서양 연안으로부터 가져온 조개껍데기가 발견됐다. 뉴기니와 북부 뉴아일랜드섬에 살던 사피엔스는 칼날을 대신한 흑요석을 바다 건너 400㎞ 떨어진 뉴브리튼섬에서 가져왔다. 발트해의 호박, 지중해의 조개껍데기가 1500㎞ 내륙으로 들어간 홍적세 크로마뇽인 유적지에서 발견됐다(재러드 다이아몬드 《어제까지의 세계》). 그렇다면 만주와 화북 일대, 동아지중해권에서 근거리 무역이 활발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대 중국 능가한 원조선의 산업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주나라나 춘추전국시대라 하면 엄청나게 발전한 사회로 안다. 반면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우리는 원시적인 수준이었으며, 산업도 외국 무역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원조선은 제련술과 제철술 등 금속산업과 요업(세라믹)이 매우 발달해 뛰어나고 화려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기술력이 발전했고 지식과 경험을 활용한 실용과학 수준이 뛰어났던 결과다. 당연히 다른 분야 산업들도 동반 발전했다.광업도 발달했다. 원조선의 영토였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이 다양한 자원의 보고였기 때문이다. 1970년까지 북한 경제가 우리를 앞선 것은 일본이 건설한 중화학공업 잔재를 활용한 것 외에 풍부한 지하자원 때문이었다. 또한 왕험성 후보지의 하나인 고구려의 요동성과 안시성(해성) 지역은 동아시아 최대, 최고의 철 생산지였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뒤 ‘안산제철소’를 건설해 대륙 침략의 자원 공급지로 이용했다. 이 지역은 은 생산지로 유명하며, 북한은 원조선의 은광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철은 내수용으로 사용됐지만 수출품이기도 했다. 무기·농기구·동전 등의 완제품과 기술력으로 만든 철덩이(鐵鋌) 같은 1차 가공품들도 수출했다. 《후한서》 《삼국지》 등의 기록을 보면 원조선 말기에 남쪽의 삼한 소국들도 철을 화폐나 수출품으로 사용했다.
정교하게 가공한 옥 공예품
원조선은 옥 광업이 발달했고 가공 기술도 뛰어났다. 동아시아 최고(最古) 최대 문명인 랴오허문명(遼河文明), 그 가운데에서도 핵심인 홍산(紅山)문화에 요즘 많은 관심을 갖는다. 신석기 문화지만 원조선과 연관성이 깊기 때문이다. 핵심 지표 유물은 옥 제품들이다. 정교한 가공술과 화려함, 다양한 종류의 도구·장식품에 담긴 풍부한 상징성과 고도의 논리, 많은 양과 뛰어난 가공기술 때문에 고대문명에 대한 통념을 깨뜨렸다. 만주 지역이 낙후됐고 문화가 열악했다고 여겼던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다.그 옥의 산지는 압록강 하구 서쪽인 ‘수암(岫岩)’이다. 그렇다면 약 5000년 전에 남만주에는 원거리 무역망이 구성된 것이다. 이를 계승한 원조선의 만주에서 황해도에 이르는 유적에서 강옥·벽옥·연옥·홍옥·청옥·수정·마노를 비롯한 각종 구슬이 대량으로 발굴됐다. 대표 고분인 강상무덤에서는 대롱 구슬, 장고형 구슬, 둥글고 납작한 구슬 등이 무려 771개나 발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