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모습. 연합뉴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의 모습. 연합뉴스
며칠째 ‘2·4 대책’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집니다. 규모로는 역대급인 정책이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정부조차 대책 이름에 ‘획기적’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이번 대책의 핵심은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신도시로는 도심 주택 수요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늘려야 하는데 여기서 공공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원래 정비사업은 공공성을 가집니다. 특히 재개발의 경우 주변 시설이나 도로 등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 사업은 주로 민간이 해왔죠. 서울의 경우 2000년대 초중반 뉴타운사업을 통해 급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정비사업이 변곡점을 맞은 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입니다. 고인의 이름을 다시 거론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할 얘기는 해야죠. 당시 박 전 시장은 서울시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뉴타운 출구전략’을 내걸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명박·오세훈, 두 명의 전임 시장 시절 지정된 재개발구역을 해제하기 쉽도록 행정 절차를 손본 것입니다.

무리하게 추진된 뉴타운이 주민갈등을 야기하고 원주민들의 재정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마침 집값도 하락해서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손을 드는 지역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해제된 정비구역은 지난해 1월을 기준으로 전체 683곳 가운데 394곳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집값 상승의 재료가 됐다는 것이죠. 박 전 시장 10년 동안 초기 단계 재개발·재건축사업이 멈추거나 엎어지면서 이들 구역에서 나왔어야 할 공급물량이 없어진 것입니다. 인·허가권이 무기가 되기도 했는데요. 한남3구역이나 은마아파트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죠. 인허가 절차를 아예 중단시키거나 서울시 입맛대로 개발 밑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은 공급이 충분하더라도 멀리 내다보고 농사를 열심히 지었어야 하는데 밭이 다 망가져버린 셈입니다.

잘 굴러가던 사업에 몽니를 부리기도 했는데요. 사직2구역이 그렇습니다.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부활했지만 2017년엔 서울시가 역사문화보존을 이유로 직권해제한 곳이었죠. 그런데 서울시가 사직2구역의 개발을 막아선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종로구청에 지시해 아예 인가를 보류하도록 지시했고, 구역을 해제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자 법 개정까지 추진했죠.

국토교통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서울시는 입맛에 맞게 조례를 개정해 결국 사직2구역을 해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과 조례 개정을 병행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그대로 추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아, 제 뇌피셜이 아니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나온 내용입니다. 행정의 신뢰성을 훼손하면서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지적도 나왔죠. 당시 사직2구역 해제의 근거가 됐던 조례의 조문은 현재 삭제된 상태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정부가 엄청난 공급대책을 내놓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것을 민간에 맡길 경우 당장의 집값 폭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이 개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죠. 그런데 서울시도 정부도 그동안 공급은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걸까요.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