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상최대 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금융지주 CEO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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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은 줄이고, 이익은 내놓으라니
정책펀드 동원령 직후 CEO 징계
대출 '늘려라', '조여라' 오락가락
정책펀드 동원령 직후 CEO 징계
대출 '늘려라', '조여라' 오락가락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권고를 많이 벗어나면 감독당국과 향후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한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노용훈 부사장은 지난 5일 실적발표 직후의 컨퍼런스콜에서 ‘순이익의 20%를 넘어선 배당이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민간 금융사의 배당 규모까지 간섭하는 당국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라며 “금융사의 현실에 대한 자조섞인 말로도 들렸다”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금융지주에 지난해 배당을 순이익의 20% 선까지 줄이라고 요구했다. KB·신한·하나금융지주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을 냈다고 발표한 가운데, KB·하나금융지주는 당국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신한금융, 우리금융은 배당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해 “적극적 배당을 포함해 주주환원 정책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했다. 당국의 요구를 따르자니 주주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고, 그대로 배당을 하자니 금융당국에 밉보일 게 걱정되는 딜레마가 나타난 것이다.
규제산업인 금융업에선 감독당국과의 적절한 소통이 필수다.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이 지속되는 가운데, 배당을 자제해 체력을 키우라는 당국 요구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대형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가 부실화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지주사들은 코로나19 피해자를 지원하는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배당은 줄이고, 이익은 내놓으라는 모순적 요구에 처한 셈이다. 벌어들인 돈 일부를 코로나19 피해자에 쓰자는 이익공유제는 올 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뒤 구체화하고 있다. 현재로선 주요금융지주나 계열 은행이 서민금융기금에 기부하는 형태가 유력하다. 금융사들은 정부의 ‘한국판 뉴딜사업’에 투자와 대출을 늘리라는 요구도 받고 있다.
지난 3일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권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징계안을 통보했다. 조 회장에게는 ‘주의적 경고’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엔 직무 정지, 진옥동 신한은행행장에게는 문책 경고가 예고됐다. 이 ‘타이밍’을 놓고 금융권에선 무수한 뒷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배당과 징계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거취는 주요 금융사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사들은 오락가락하는 대출 정책에 대한 피로도 상당하다. 한 은행 부행장은 “코로나19 피해자에 대한 대출은 늘리면서 신용대출은 죄라는 앞뒤 안맞는 주문이 벌써 수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와 카드사는 실적이 오히려 올랐다. 그러나 주력사업인 은행 이익이 뒷걸음질했고, 코로나19 피해자와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조치가 연장되면서 부실은 감춰졌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든 금융지주사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관치, 정치금융이라는 유령의 압박 때문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금융지주에 지난해 배당을 순이익의 20% 선까지 줄이라고 요구했다. KB·신한·하나금융지주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이익을 냈다고 발표한 가운데, KB·하나금융지주는 당국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신한금융, 우리금융은 배당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해 “적극적 배당을 포함해 주주환원 정책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했다. 당국의 요구를 따르자니 주주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고, 그대로 배당을 하자니 금융당국에 밉보일 게 걱정되는 딜레마가 나타난 것이다.
규제산업인 금융업에선 감독당국과의 적절한 소통이 필수다.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이 지속되는 가운데, 배당을 자제해 체력을 키우라는 당국 요구는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대형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가 부실화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지주사들은 코로나19 피해자를 지원하는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배당은 줄이고, 이익은 내놓으라는 모순적 요구에 처한 셈이다. 벌어들인 돈 일부를 코로나19 피해자에 쓰자는 이익공유제는 올 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뒤 구체화하고 있다. 현재로선 주요금융지주나 계열 은행이 서민금융기금에 기부하는 형태가 유력하다. 금융사들은 정부의 ‘한국판 뉴딜사업’에 투자와 대출을 늘리라는 요구도 받고 있다.
지난 3일 금융감독원은 라임펀드를 판매한 은행권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징계안을 통보했다. 조 회장에게는 ‘주의적 경고’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엔 직무 정지, 진옥동 신한은행행장에게는 문책 경고가 예고됐다. 이 ‘타이밍’을 놓고 금융권에선 무수한 뒷말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배당과 징계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곤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거취는 주요 금융사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금융사들은 오락가락하는 대출 정책에 대한 피로도 상당하다. 한 은행 부행장은 “코로나19 피해자에 대한 대출은 늘리면서 신용대출은 죄라는 앞뒤 안맞는 주문이 벌써 수 개월째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 속에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와 카드사는 실적이 오히려 올랐다. 그러나 주력사업인 은행 이익이 뒷걸음질했고, 코로나19 피해자와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조치가 연장되면서 부실은 감춰졌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든 금융지주사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관치, 정치금융이라는 유령의 압박 때문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