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기' 꽃피운 화가·문인들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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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첫 기획전
일제강점기 우정·예술세계 조명
'紙上의 미술전' 등 4부로 구성
김환기의 '자화상' 등 첫 공개
덕수궁서 5월 30일까지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첫 기획전
일제강점기 우정·예술세계 조명
'紙上의 미술전' 등 4부로 구성
김환기의 '자화상' 등 첫 공개
덕수궁서 5월 30일까지 전시
1941년 봄, 잡지 ‘문장’의 편집자였던 조풍연의 결혼식이 열렸다. 가난했던 화가들은 축의금 대신 각자의 그림을 엮은 화첩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가난이 만들어낸 낭만이다. 하지만 지금 보면 화첩의 면면이 화려하다. 김환기, 길진섭, 김용준, 정현웅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끈 대가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소품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화가와 문인들은 암울함 속에서도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찬란한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교류와 예술세계를 조명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첫 기획전으로 덕수궁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다. 1930~1950년대 초반 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등의 문인과 구본웅, 김용준,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등이 시대를 예민하게 읽어내며 이룩한 예술적 풍경을 복원했다. 회화 140여 점, 시집과 잡지 원본 등 희귀한 서지 자료 200여 점, 각종 시각자료 300여 점을 감상하려면 두 시간도 빠듯하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당대 예술인의 사랑방이던 이상의 ‘제비다방’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발표 당시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연재가 중단됐던 이상의 ‘오감도’에서는 언어와 회화의 경계를 허물려는 도발이 읽힌다. 구본웅, 황술조, 길진섭, 유영국의 작품에서는 야수파와 초현실주의, 다다이즘과 추상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전위적 시도를 읽을 수 있다.
2부인 ‘지상(紙上)의 미술전’은 인쇄매체가 막 꽃피우던 시기에 신문과 잡지, 시집 등을 통해 구현된 예술세계를 조명했다. 도서관 검색대처럼 꾸민 전시관은 당시를 풍미했던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로 가득 채웠다. 문인과 화가가 만나 빚어낸 ‘화문(畵文)’의 세계인 셈이다. 백석의 시집 《사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한국 근대문학의 보석 같은 시집의 원본도 공개된다.
3부는 각별한 우정을 나눴던 예술인들을 소개한다. 정지용과 장발,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이 대표적이다. 모든 희망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중섭이 당시 몸을 의탁하고 있던 시인 구상의 가족을 부럽게 바라보는 ‘시인 구상의 가족’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울림을 전한다.
마지막 전시실은 문인 못지않은 필력을 뽐냈던 화가들의 공간이다. 수필집 ‘강가의 아뜰리에’로 유명한 장욱진을 비롯해 김환기가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편지, 천경자의 수필집 등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거나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김환기의 ‘자화상’과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혼란을 담아 그린 ‘소반’,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김환기의 ‘달밤’은 전시기획자들이 시인 김광균의 사진을 단서로 추적해 소장자의 침실에서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정현웅의 삽화를 곁들인 발표 당시의 모습대로 만나는 것도 새롭다.
조영복 광운대 교수는 “지금 세계에서 각광받는 한국의 대중문화 등 소프트파워의 저력은, 거슬러 올라가면 어두웠던 일제시대를 통과했던 선배 예술가들의 힘이 축적된 바탕 위에서 완성된 것”이라며 “잊혀졌던 우리 근대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일제강점기, 화가와 문인들은 암울함 속에서도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찬란한 작품을 남겼다. 이들의 교류와 예술세계를 조명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첫 기획전으로 덕수궁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다. 1930~1950년대 초반 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등의 문인과 구본웅, 김용준,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등이 시대를 예민하게 읽어내며 이룩한 예술적 풍경을 복원했다. 회화 140여 점, 시집과 잡지 원본 등 희귀한 서지 자료 200여 점, 각종 시각자료 300여 점을 감상하려면 두 시간도 빠듯하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는 당대 예술인의 사랑방이던 이상의 ‘제비다방’을 모티브로 구성했다. 발표 당시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연재가 중단됐던 이상의 ‘오감도’에서는 언어와 회화의 경계를 허물려는 도발이 읽힌다. 구본웅, 황술조, 길진섭, 유영국의 작품에서는 야수파와 초현실주의, 다다이즘과 추상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전위적 시도를 읽을 수 있다.
2부인 ‘지상(紙上)의 미술전’은 인쇄매체가 막 꽃피우던 시기에 신문과 잡지, 시집 등을 통해 구현된 예술세계를 조명했다. 도서관 검색대처럼 꾸민 전시관은 당시를 풍미했던 신문 연재소설의 삽화로 가득 채웠다. 문인과 화가가 만나 빚어낸 ‘화문(畵文)’의 세계인 셈이다. 백석의 시집 《사슴》,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 한국 근대문학의 보석 같은 시집의 원본도 공개된다.
3부는 각별한 우정을 나눴던 예술인들을 소개한다. 정지용과 장발,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이 대표적이다. 모든 희망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중섭이 당시 몸을 의탁하고 있던 시인 구상의 가족을 부럽게 바라보는 ‘시인 구상의 가족’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울림을 전한다.
마지막 전시실은 문인 못지않은 필력을 뽐냈던 화가들의 공간이다. 수필집 ‘강가의 아뜰리에’로 유명한 장욱진을 비롯해 김환기가 가족과 지인에게 보낸 편지, 천경자의 수필집 등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거나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김환기의 ‘자화상’과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혼란을 담아 그린 ‘소반’,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김환기의 ‘달밤’은 전시기획자들이 시인 김광균의 사진을 단서로 추적해 소장자의 침실에서 세상으로 끄집어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정현웅의 삽화를 곁들인 발표 당시의 모습대로 만나는 것도 새롭다.
조영복 광운대 교수는 “지금 세계에서 각광받는 한국의 대중문화 등 소프트파워의 저력은, 거슬러 올라가면 어두웠던 일제시대를 통과했던 선배 예술가들의 힘이 축적된 바탕 위에서 완성된 것”이라며 “잊혀졌던 우리 근대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