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 10억 아파트 보증금 6억과 증여 땐
일반 증여보다 세금 8천만원 줄어
초고가 주택은 불리
자산가들 사이에선 특히 절세 목적의 ‘부담부 증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주택을 자식에게 증여하면서 대출금이나 임대보증금도 같이 물려주는 방식이다. 이를 통하면 증여세와 취득세 등을 줄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20억원을 훌쩍 넘어가는 고가 주택이면 부담부 증여가 그냥 집을 파는 것보다 세금에서 손해가 날 수 있다. 또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안 되는 자녀에게 섣불리 증여해줬다가는 국세청의 ‘현미경 검증’에 적발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주택가격 고려해 증여 방식 결정해야
서울에 사는 2주택자 김모씨는 5억원에 취득해 현재 시세가 10억원, 공시가격 7억원인 아파트를 팔지, 자식에게 물려줄지 고민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보증금 6억원에 전세를 준 상태다.현 시세로 집을 팔면 양도소득세는 2억4600만원(지방소득세 포함) 나온다. 그렇다고 집을 그냥 자식에게 증여해주면 세금(총 3억500만원)이 더 많이 나온다. 증여세를 2억1800만원 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에게 명의를 넘겨줄 때 증여취득세도 8700만원 부과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다주택자 증여를 막으려고 작년부터 증여취득세율을 3.5%에서 12%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때 부담부 증여를 택하면 세금이 줄어든다. 증여된 금액이 현재 주택 시세에서 전세보증금을 뺀 4억원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증여세도 5800만원으로 대폭 감소한다.
다만 부담부 증여 때는 양도소득세가 추가로 붙는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부모 입장에선 채무(보증금)가 사라져 이득을 본 것으로 간주돼서다. 부담부 증여 때의 양도세는 주택 시세에서 전세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해 계산하는데, 이 경우엔 1억3600만원이 나온다.
취득세 절세 효과도 크다. 보증금 6억원분에 대한 취득세는 증여취득세가 아니라 일반 매매 시 취득세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무주택자인 자녀의 경우 세율이 1~3%로 작다. 취득세는 총 2600만원 나온다.
결론적으로 부담부 증여 시 총 세금은 2억2000만원으로 제3자 양도(2억4600만원)와 일반 증여(3억500만원) 때보다 적다.
하지만 항상 부담부 증여가 세금에서 유리한 건 아니다. 특히 증여 주택이 초고가이면 되레 불리할 수 있다. 보증금을 빼더라도 증여가액이 10억원이 넘으면 40~50%의 높은 증여세율이 적용돼서다. 예컨대 증여 주택이 25억원, 보증금(또는 대출금)이 10억원인 경우엔 부담부 증여를 해도 증여세만 4억700만원이 나온다. 반면 이 주택을 양도차익 7억원을 남기고 팔면 양도세는 3억6000만원(2주택자 경우)이다. 증여가 손해다.
“소득 여건 되는 자녀에게 물려줘야”
부담부 증여를 할 때는 이것 말고도 주의해야 할 점이 더 있다. 우선 부모가 집과 함께 넘긴 채무는 자녀 스스로 갚아야 한다. ‘일단 집을 부담부 증여해 놓고 보증금을 나중에 슬쩍 갚아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세무당국이 이런 부분에 대해 정밀 검증하고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대출이나 보증금이 먼저 있는 상태에서 증여해야 부담부 증여가 인정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증여를 받는 날 임대차계약을 동시에 맺는 경우는 부담부 증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간 차용증은 제3자와 쓰듯
국세청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택 구입비를 지원하는 경우에 대한 검증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엔 증여세 신고 없이 거액의 자금을 주는 관행이 줄고, 금전대차계약서(차용증)를 쓰고 돈을 빌려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차용증만 써 놓으면 문제 없겠지”라고 안심해선 안 된다.우선 계약서의 내용이 상세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제3자와의 금전대차계약서와 똑같이 채무 상환 기간과 방법, 이자율을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이자율은 가급적 연 4.6% 이상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세법이 가족에게 금전을 차용한 경우 4.6%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이자율이 4.6%에 못 미치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받을 수 있다.
차용 금액이 큰데도 원리금을 일시 상환하게 한다거나, 상환 기간이 지나치게 긴 경우 등도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우 팀장은 “이자율 외에는 차용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공식’은 없다”면서도 “가족이 아닌 사람과 거래할 때도 이렇게 후한 조건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상식에 부합하는 선에서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용증 작성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세청은 작년 하반기부터 가족 간 차용증이 작성된 이후 원리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후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국세청은 부채 상환 관리 점검 횟수도 기존 연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