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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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주말인 6~7일 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10만 명에 육박했다. 2007년 군정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양곤 시내 곳곳에서 모인 시위대는 약속이나 한 듯 ‘술레 파고다’로 몰려들었다. 토요일에도 그랬고, 일요일에도 그랬다. 군부가 인터넷을 끊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까지 차단한 상황에서 시위대는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며 이곳으로 집결했다. 시위 군중이 이곳으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고다는 불탑 사원을 뜻하는 말이다. 황금 불탑으로 이뤄진 술레 파고다는 양곤 시청이 있는 도심의 중심부에 있다. 이곳은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이자 정치적 광장이기도 하다. 영국이 식민 통치 시절 이 불탑 사원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관공서도 여기에 밀집해 있다.

술래 파고다 바로 옆에는 미얀마 독립기념탑이 우뚝 솟은 마하반둘라 공원이 있다. 흔히들 술레 파고다와 마하반둘라 공원을 한 데 묶어서 ‘파고다 공원’이라고 부른다.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구심점과 공간적 상징성을 동시에 갖는 곳이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발원지도 이곳이다. 서울 종로의 파고다 공원(탑골공원)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곳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1988년의 민주화 항쟁과 2007년 반정부 시위의 거점이 이곳이었다. 1948년 독립한 미얀마는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한 1당 독재 정치를 오랫동안 경험했다. 이 시기에 식민지 시절보다 못한 빈곤국가로 전락했다.

1988년 8월 8일 술레 파고다를 중심으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8’이 네 개 겹치는 날이라고 해서 ‘8888 항쟁’으로 불린다. 시위는 9월 16일 군부에 ‘완전 진압’될 때까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이 기간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 승려들이 희생됐다. 영화 ‘비욘드 랑군’은 8888 항쟁 중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2007년에도 8월 15일부터 9월 29일까지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곳에서 일어났다. 군부가 8월 15일 예고 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기존보다 약 5배, 휘발유와 경유 값을 1.66~2배 인상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군정 반대 운동에 나섰다. 한 달 반 만에 군사정부에 의해 진압된 당시 유혈사태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확한 규모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올해 시위는 2007년보다 더 뜨거운 것 같다. 현지 소식통들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난 1일부터 5일까지는 시민들이 거의 거리로 나서지 않았는데, 주말인 어제와 오늘 급속도로 시위대가 많아졌다”며 “2007년도에 이 정도로 시위대가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3주에서 한 달 정도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시위대가 펼쳐든 현수막에는 ‘우리는 군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구호가 담겨 있다. 한 청년은 “미래 세대를 위해 독재에 반대한다”며 “역사를 만들 때까지 혁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의 시민들은 손뼉으로 시위대를 격려했고, 차량 운전자들은 크고 길게 경적을 울리며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일부는 저항세력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주부들은 냄비를 부딪치는 소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양곤뿐만 아니라 수도 네피도 등 12개 도시에서도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양곤은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역사와 전통이 깊은 옛 수도다. 인구 약 550만 명으로 전체 국민(약 5480만 명)의 10%가 이곳에 살고 있다. 도시 이름인 양곤은 미얀마어로 ‘전쟁의 끝’ 또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이 하루빨리 군부 독재와 쿠데타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안정과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누리길 기대해 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