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인당 111만원'…월급 받는 농업인 1만명 육박
매달 일정금액을 월급 형태로 받는 농업인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을 중심으로 농업인 소득 안정을 위해 농업인 월급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결과다. 하지만 각종 제반 비용을 국비로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현금살포형 '포퓰리즘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월급 지급액 1000억원 육박

전남도는 올해 농업인 월급제 신청을 최근 받기 시작했다. 신청한 농업인에게 최대 월 250만원의 월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전남도처럼 농업인에게 월급을 주는 지자체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농업인 월급제를 도입한 기초 지자체는 52곳이었다. 전체 기초 지자체 226곳의 약 23%에 해당한다. 충남 천안, 전남 담양·함평·화순, 경남 창원, 대구 달성 등에서 월급제가 시행되면서 도입 지자체 수가 2019년 대비 6곳 늘었다. 농업인 월급제는 2013년 경기 화성시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2018년 26곳, 2019년 46곳 등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들에게 지급한 연간 월급 총액은 2017년 262억원에서 2020년 1~10월 기준 894억원으로 늘었다. 월급 받는 농업인 수는 같은 기간 3634명에서 8005명으로 확대됐다. 작년 1~10월을 기준으로 농업인 1명당 약 111만원의 월급을 받아간 셈이다. 연간 기준으로 추산하면 지난해 약 1000억원에 가까운 월급이 지급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무이자 대출...농업인 소득 안정에 기여

농업인 월급제는 농협 등과 계약재배하는 농업인이 계약재배 대금의 일부를 월급 형태로 미리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지자체별로 규정은 다르지만 통상 계약재배 대금의 60~80%를 다달이 나눠 매달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250만원씩 받는 게 보통이다.

농협이 매달 일정액의 원금을 융자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는 지자체가 지방비 등으로 부담하는 구조다. 미래 수확 농산물을 담보로 한 무이자 대출제도의 성격으로 보면 된다. 돈을 퍼주는 포퓰리즘성 정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농업인들의 호응이 높은 것은 농업 특성상 수확기가 연중 고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벼농사를 예로 들면 농업인들은 가을 수확후 쌀을 팔아 목돈을 쥐게 되지만 겨울부터 여름까지는 별다른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소득이 없을 때 생활비가 부족하거나 자녀 학자금 등 목돈을 써야할 경우 높은 이자율의 일반 자금을 대출해야해 영세농가를 중심으로 소득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농협 관계자는 "매달 월급 형태로 돈을 지급받다보니 체계적으로 지출 계획을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농민들의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비 지원 과도하면 제2의 농민수당 될수도

농협은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농업인 월급제를 올해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벼 농가 위주로 구성된 월급제 대상 품목을 시설원예, 노지채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월 지급규모도 300만원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농업인 월급제가 확산하면서 수반되는 비용 등에 대한 국비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기초 지자체에서는 이자 지급액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농민 단체 등은 월급을 먼저 받은 후 계약 재배 물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국가가 이를 보전해줘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업인의 빚을 국가 재정으로 갚아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농업인 월급제가 재정살포형 농민수당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농정 전문가는 "농업인 월급제에 대한 국비 지원이 늘어나 손실을 보전하게 되면 현금을 주는 농민수당과 다를 바가 없다"며 "농협이 월급 선지급에 따른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 등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