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개월 때 입양된 김찬수 군(가운데)이 10일 경기 안성 자택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김동석 씨(왼쪽)·김인옥 씨 부부가 김군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생후 6개월 때 입양된 김찬수 군(가운데)이 10일 경기 안성 자택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김동석 씨(왼쪽)·김인옥 씨 부부가 김군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피보다 진한 뭔가가 있어요.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면서 살아온 시간이 벌써 20년인걸요. 이게 진짜 가족이에요.”

생후 6개월 때 입양된 김찬수 군(19)의 롤모델은 그의 부모님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를 ‘내 새끼’라고 부르며 한결같이 아껴주는 이들이라고 했다. 김군은 누군가를 만나 자기소개를 할 때도 스스럼없이 말한다. “저는 부모님이 가슴으로 낳은 사람입니다.” 이유는 또렷하다. 입양아로 자라온 나날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김군은 “도리어 자랑하고 싶다”며 “배 아파 낳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사랑으로 키워준 멋진 부모님이 계신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 지붕 사남매

경기 안성의 한적한 교외에 자리 잡은 마당 있는 집. 10일 이곳에서 만난 김군은 “여기가 바로 제가 뿌리내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라며 밝게 인사했다. 김군은 이날 아버지 김동석 씨(55)와 경기 용인으로 운전연수를 다녀온 뒤였다. 김군의 어머니 김인옥 씨(52)는 “찬수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운전이라고 해서 요즘 저렇게 둘이 꼭 붙어다닌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군의 집안 곳곳에는 가족사진이 붙어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사진은 두 형제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여동생의 볼에 뽀뽀를 하는 모습. 김씨 부부 자녀들의 어린 시절이다. 김씨 부부의 친생자인 김하림 씨(23)와 찬수 군이 갓 입양한 동생 시연 양(16)을 처음 만난 2005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들 ‘김씨 패밀리’는 대가족이다. 2003년 찬수 군을 입양한 데 이어 2005년 시연 양까지 입양하면서 삼남매와 20여 년을 함께했다. 2012년엔 성인이 된 ‘장남’ 김진 씨(31)까지 입양하면서 사남매가 됐다. 김인옥 씨는 “누가 뭐래도 넷 다 하나같이 귀한 내 자식”이라며 “매일 따뜻한 밥 함께 나눠먹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찬수 군은 옆에서 취미인 기타를 튕기며 말했다. “입양 가족이라고 특별할 게 없어요. 그냥 평범한 가족이에요. 우리가 뭐 달라보이나요?”
"네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김동석·김인옥 씨 부부가 김찬수 군의 입양 직후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네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김동석·김인옥 씨 부부가 김찬수 군의 입양 직후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입양의 세계로

김씨 부부는 처음부터 입양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김인옥 씨는 하림 씨를 낳은 뒤 둘째 임신을 고민하던 2003년 우연히 이웃에 사는 위탁모가 돌보던 찬수를 만났다. 김씨는 “당시만 해도 입양은 다큐멘터리에나 나오는 얘기였다”며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서 엄두도 못 냈다”고 회상했다. 위탁모 활동을 하던 그 이웃은 둘째 난임 고민 얘기를 하는 김씨에게 덜컥 “이 아이 한 번 안아봐”라며 갓난아기를 품에 안겼다.

“순간 찌릿하고 전율이 올랐어요. 해맑게 웃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내 품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워주고 싶다고.” 이 아이는 찬수였다. 찬수는 당시 3개월 안에 입양 부모를 찾지 못하면 시설에서 길러져야 하는 ‘외톨이’ 신세였다. 이 사연은 김씨의 마음을 더 강하게 움직였다. 평소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던 남편도 동의했다.

김동석 씨는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본 입양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며 “매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1만 여 명이 넘는다는데 한 명이라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해보려는 마음으로 한 입양인데 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어마어마한 행복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배 아파 낳은 자식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차별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자체 검열’도 많이 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길러보니 하나같이 예쁜 ‘내 새끼’였다고 이들 부부는 말했다. 김인옥 씨는 “막내 시연이를 입양한 것도 찬수가 입양아라는 데 위축되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편견·색안경 벗어주세요”

이들 가족에겐 이따금 ‘고비’가 찾아온다. 최근 ‘정인이 사건’처럼 입양 아동을 둘러싼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든다. 김씨는 “입양 아동을 특정 목적에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을 거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둘, 셋이나 입양한 게 수상하다며 이유를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찬수나 시연이에게 가는 마음이 그래도 하림이만큼은 아니죠?’도 단골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들 부부는 말한다. “다 내 새끼인데 어떻게 크기를 따져요. 질문이 잘못됐어요.”
입양으로 가족이 된 김동석 씨(왼쪽부터), 김찬수 군, 김인옥 씨가 경기 안성의 자택 앞 마당을 산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입양으로 가족이 된 김동석 씨(왼쪽부터), 김찬수 군, 김인옥 씨가 경기 안성의 자택 앞 마당을 산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런 시선은 ‘공개 입양’을 선택한 가족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아동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선 처음부터 입양 사실을 공개하는 게 낫다고 김씨 부부는 입을 모았다. 찬수 군은 “초등학교 때는 입양아라고 놀림을 받아 힘든 적도 있었지만 뒤늦게 알았다면 ‘부모님이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에 더 혼란을 겪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가족은 동네에서 ‘입양 전도사’로 꼽힌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입양 활동을 홍보하고 알리는 역할에 앞장선다. 김인옥 씨가 소개해 아동을 입양한 가족도 여럿이다. 김인옥 씨는 “한 명이라도 더 시설보다는 가족 품에서 안정적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찬수 군은 “우리 가족이 입양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편견을 없애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달 대학교 입학을 앞둔 찬수 군에겐 꿈이 있다. 옷 만드는 게 취미인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키운 패션 감각을 토대로 패션브랜드를 창업하는 것.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인터넷 쇼핑몰 창업에 도전해 볼 생각이에요. 첫 수입으로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선물을 사주는 게 1차 목표입니다.”

안성=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