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이체 등으로 받은 판매대금이 비록 불법행위에 의한 수익일지라도 형법이 정한 몰수·추징의 대상이 되는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식품위생법 및 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식품회사 운영자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추징금 1억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A씨는 자신이 실질적인 사장이면서 B씨(홍보팀장)을 회사의 대표이사로 내세워 2013년 4월 중순부터 2014년 4월 중순까지 민물장어 및 산수유, 울금 관련 식품들을 판매했다. A씨는 20여명의 전화판매원을 고용한 뒤 해당 식품에 대해 "여러 가지 질병과 고혈압, 당뇨, 전립선, 암예방에 좋다"고 허위로 홍보하도록 했다. 마치 질병 예방 및 치료에 효과가 있는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혼동하도록 광고함으로써 1억2000만원 상당의 수익을 얻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 벌금 1000만원에 일부 압수품 몰수, 추징금 1억2000만원을 선고했다. B씨에게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A씨 측은 2014년 1월 31일 이전까지의 수익은 추징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선 중대범죄행위에 의해 생긴 재산 또는 범죄행위의 보수로 얻은 재산 등에 대해 몰수·추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당시 A씨 사건의 범행은 2014년 1월 31일 시행된 개정 식품위생법에 의해 비로소 처벌조항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시기 이전 범행에 대해선 범죄수익은닉법이 아닌,
형법 제48조에 의해 1억2000만원 추징이 가능하다고 보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형법 48조에선 '범인 외의 자의 소유에 속하지 아니하거나 범죄 후 범인 외의 자가 사정을 알면서 취득한 다음 각 호의 물건은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형법 48조에 의한 몰수 및 추징 대상은 '물건'에 한정되며, 피고인이 은행계좌로 송금·이체 받은 판매대금이나 신용카드결제액은 은행에 대한 예금채권이나 신용카드회사에 대한 신용판매대금지급채권으로 봐야 해 몰수·추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이 해당 기간(2013년 4월 중순~2014년 1월31일 이전) 의약품 또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ㆍ혼동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해 식품을 판매한 대가를 어떤 방식으로 취득했는지, 또 그 대가가 형법 제48조 몰수의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심리하지 않은 채 피고인이 취득한 범죄수익에 대해 해당 법 조항을 적용해 추징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