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을 육성하려는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반도체 품귀’ 현상의 여파다. 반도체를 적시에 조달하지 못하면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져가고 있다.

“반도체산업 키워라” 각국 경쟁

14일 경제 전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EU 국가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EU는 독일, 프랑스 주도로 최대 500억유로(약 67조원)를 반도체산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보조금, 세금 인하 등을 통해 투자액의 최대 40% 정도를 기업들에 돌려줄 계획이다.
EU의 적극적 움직임은 역내 반도체 생산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EU에서 2019년 기준 매출이 100억달러를 넘는 반도체 기업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ASML이 유일하다.

유럽에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 등 차량용 반도체와 아날로그반도체 등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생산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주로 대만 TSMC 등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에 상당한 물량의 생산을 맡기고 있다.

미국 반도체 생산 비중 12%에 그쳐

미국 정부는 더욱 적극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덮친 반도체 부족 사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미국 주요 자동차 회사들의 공장이 멈추는 등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북미 지역 3개 공장의 감산을 3월 중순까지 연장했다.

미국 반도체업체들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지원해달라는 요구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인텔, 퀄컴, AMD 등 미국 반도체 회사 대표(CEO) 21명은 최근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등의 형태로 반도체 생산의 인센티브를 위한 재정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서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에서 최근 12%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삼성전자에 쏟아지는 러브콜

EU와 미국은 역내 반도체산업 육성을 위한 유치 대상 기업으로 TSMC와 함께 삼성전자를 꼽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0일 “EU가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재무부 관계자는 최근 브리핑에서 “TSMC와 삼성전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쏟아지는 ‘러브콜’에도 삼성전자는 마냥 편한 상황은 아니다. 해외에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면 ‘과잉·중복 투자’ 우려가 커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 평택에 1공장(P1)을 완공했고, 2공장(P2)엔 최첨단 파운드리와 메모리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미국이나 EU에 공장을 지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주문이 들어올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3년 내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M&A)하겠다고 공언한 삼성전자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순현금은 104조원인데 20조원 이상을 투자해 해외 공장을 지으면 그만큼 M&A에 사용할 ‘실탄’이 줄어든다.

자국 반도체산업을 보호하려는 흐름이 강해지면 삼성전자의 M&A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주요 M&A 대상으로 NXP, ST마이크로, 인피니언 등이 거론된다. ‘아시아 반도체 기업’을 경계하고 있는 각국 정부가 기업결합심사에서 ‘퇴짜’를 놓으면 M&A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