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새 저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출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50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자력발전이 필수라는 ‘상식’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10년이나 20년 내로 기후변화가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코로나 팬데믹이 10년마다 발생하는 것만큼 심각해질 것”이라며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로 원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핵분열(원전), 핵융합, 수소에너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며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게이츠의 이런 발언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무수히 주장해온 것으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6년 파리 기후변화협약과 2019년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계기로 2050 탄소중립이 전 세계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원전이 해결책’이란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원전 확대를 위해 작년 말부터 조(兆)단위 산업 지원책을 앞다퉈 발표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60여 기를 추가로 지어 전체 발전량의 11%를 맡긴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도 지은 지 40년 넘은 원전 재가동을 모색하는 마당이다.

실상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밀어붙였고, 경제성 조작 관여 혐의로 주무장관이 수사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물밑에선 전력난을 겪는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을 모색했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싶다. 여당이 “인체에 유해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괴담’에 근거해 월성원전 조기폐쇄를 합리화했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전문가들의 반박에 의해 논파된 게 얼마 전이다. 그런데도 어제 “중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원전을 짓지 않는다”(노후원전 TF 김성환 의원)며 또다시 사실 호도에 나섰다.

정부·여당이 대통령 선거공약인 ‘탈(脫)원전’을 고수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지만, 이는 세계적 추세와 맞지 않을뿐더러 탄소중립 목표와도 배치된다. 비현실적 정책을 고집하다간 한국만 국제 흐름에서 뒤처진 채 탄소 감축도 실기할 공산이 크다. “더 많은 원전을 사용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망을 탈탄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이츠의 경고를 정부는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